일신이 살자 하니
무명씨
일신이 살자 하니 물 것 겨워 못 살리로다.
피겨 같은 가랑니 보리알 같은 수퉁니 주린 이 갓깬 이
잔 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는 놈 뛰는 놈에
비파 같은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아비 갈따귀 사마귀
센 바퀴 누른 바퀴 바구미 거저리 부리 뾰족한 모기 다리
기다란 모기 살진 모기 야윈 모기 그리마 뾰록이
주야로 빈틈없이 물거니 쏘거니 빨거니 뜯거니
심한 당비루에 어려워라
그 중에 차마 못 견딜 손 오뉴월 복더위에 쇠파린가 하노라.
복더위가 한창이다. 여름엔 더위도 더위지만 이 시조에 나타난 것처럼 그야말로 물것들이 참 성가시게 한다. 여름의 이 물것들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말썽을 일으킨다.
2009년 6월 16일 세계 정치의 중심 백악관에서도 이 물것 사건이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CNBC와 뉴욕타임스 공동 인터뷰 도중 날아든 파리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아 곤혹스런 입장에 몰린 것이 그것.
오바마 대통령이 날아든 파리를 노려보다가 왼손 등 위에 앉기를 기다려 오른손으로 단방에 때려잡는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인터넷에 유포됐다. '동물의 윤리적 처우 모임' 회원들은 즉각 이에 대해 공식 항의 입장을 밝히고, 파리를 덫으로 잡은 뒤 밖에다 놓아주는 인도적 장치를 백악관에 보낼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 참, 웃고 말아야 할 일인지, 정말 심각한 건지 가름하기 어렵다.
이 시조는 사설시조이고 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설시조는 시조 3장 중 종장 첫 음보와 둘째 음보만을 지키면서 길게 늘인 형식으로 늘어놓을 사설이 많을 때 효과를 드러낸다. 사람을 귀찮게 하는 여름철의 물것들을 모두 망라하면서 많은 물것 들 중에서도 쇠파리가 가장 귀찮다고 읊은 것이다.
여름의 물것들, 이것을 당대 탐관오리들의 착취나 요즘의 세금쯤으로 바꿔 읽으면 그 재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 세제에 따르면 시조의 '쇠파리'가 마시고 피우면서 내는 줄도 모르고 내며, 세금 낼 만큼 내고 욕먹는 주류나 담배소비세 같은 것쯤 되지 않을까 싶다.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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