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영애의 고전음악] 바로크 시대의 두 불꽃, 비발디와 바흐

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다. 이미 바캉스 시즌이 시작된 지도 한참 지났고 유럽 각 도시의 시민들은 자기 집이 아닌 휴가지에서 즐겁고 신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7월 14일 저녁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트로카데로에서 에꼴 밀리테르에 이르는 넓은 잔디밭에는 해가 지면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찾아와 혁명 기념 불꽃놀이 축제를 구경한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멋지고 환상적인 불꽃놀이를 구경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진행시간이 한 시간 이상 지속되는 대규모의 화려한 불꽃놀이를 구경하기가 유럽에서도 쉽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예술의 나라 프랑스, 예술의 도시 파리답게 정말 예술적인 도안의 불꽃놀이를 해마다 새롭게 디자인해 보여주곤 했다.

바로크 시대 하면 유난히 불꽃과 관련되는 음악이 떠오르고 (헨델의 관현악 모음곡 '왕궁의 불꽃놀이) 바로크 건축양식 (17세기 로코코 양식을 촉발시켰다고 한다)의 대표격인 베르사이유 궁전은 불꽃과 마치 하나인 것처럼 잘 어울린다.

음악의 바로크 시대에는 불꽃 같은 두 대가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비발디(Antonio Vivaldi,1678~1741)와 독일의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가 바로 그들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자신들의 문화·예술을 그리스와 연결시키면서 특히 문학과 미술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이탈리아인들은 드디어 17세기 바로크 시대가 열리면서 오페라를 비롯해 바이올린족 현악기 음악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새로운 합주 음악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 시대의 이탈리아 음악의 정상을 보여준 작곡가가 바로 '빨강머리 신부님'이란 별명을 가졌던 비발디였다. 뛰어난 바이올린 주자이기도 했던 비발디는 성직자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장 세속적인 오페라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트리오 소나타 등 다양한 장르의 수백 개의 기악과 성악곡을 남겼다.

비발디보다 7살 아래인 바흐는 이탈리아에 비하면 아직은 여러모로 음악적인 모습이 많이 뒤떨어진 독일에서 엄격한 새로운 교회의 규범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중대한 음악적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해나가고 있었다.

다만 비발디와 바흐가 다른 점은 비발디는 성직자의 신분이었던 만큼 세속적 결혼을 하지 않았던 탓에 세속적인 책임과 부담이 적었을 것이고, 바흐는 초상화를 통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매우 행복한 결혼 생활을 두 번씩이나 경험했던, 어찌보면 가족적 책임과 의무라는 멍에로 평생을 경제적 궁핍과 빈곤 속에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두 사람이 해는 다르지만 똑같이 불꽃이 가장 잘 어울리는 7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비발디와 바흐, 두 사람 모두 평생을 음악을 위해 자신들이 받았던 재능의 100%가 넘치도록 최선을 다해 살았고 세상과 이별할 때는 불꽃처럼 빛을 내면서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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