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학생들의 '사상적인 은사'로 불리던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7월 1일 '인권실천시민연대'라는 한 단체의 10주년 기념식에서 오늘의 한국사회, 정확하게는 이명박 정부 1년 6개월의 상황과 관련 '파시즘 시대의 초기'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다.
지난 5월의 민교협 토론회에서도 파시즘의 실체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6월의 '마르크스 코뮤날레' 학술토론회에서도 역시 파시즘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파시즘' 토론에서 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아직까지는 우리의 현실 상황을 '파시즘'이라고 확정하기에는 석연치 않고,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정쩡한 상태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파시즘의 '초기'라고 할 수 있거나 파시즘 도래의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학계의 이런 논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입에서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부쩍 자주 입에 올라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건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처음으로 이 용어가 우리 사회에 자꾸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지하다시피 파시즘이란 용어는 '묶다'(연맹) '합하다'(동맹)는 어원을 가진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파시즘이란 이 말은 대체적으로 '반이성주의'적인 특성을 가지며, 대상을 불문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적이며 폭압적인 모든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경찰과 검찰 같은 억압적인 국가기구의 전면적인 등장과 전체주의적 파괴 충동의 속성을 가진, 파시즘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 상공을 배회하다가 국민들 사이에 섞이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하다.
검찰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구속했지만 무죄로 풀려나고, 경찰이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주장하는 촛불 시민과 유모차 어머니들을 방패로 위협하고, 국가가 미디어법 개정을 통해 방송을 보수언론과 재벌의 품안에 넘겨주려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가 공권력이 용역을 동원하며 빚은 소위 '용산참사'가 모레(20일)로 꼭 반년이 된다. 용산참사에서 모두 여섯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가운데 경찰 한 명의 주검을 제외한 다섯 구의 주검이 지금도 냉동고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참사를 주도한 경찰에 무죄 판정을 준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내정했다가 청문회 과정에서 '비리백화점'이라는 사실만 드러낸 채 검찰 조직 전체에 창피를 준 최근의 사태는 한편의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공권력이 떳떳하다면 용산 참사 수사 기록 중 3천쪽은 왜 공개하지 못하는지?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왜 진실하게 사과하고 유가족과 상처 입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지….
'150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얼어붙은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다// 까닭도 알 수 없다/ 죽인 자도 알 수 없다/ …// 평지에선 살 곳이 없어 망루를 짓고 올랐다/ 35년째 세를 얻어 식당을 하던 일흔둘 할아버지가/ 25년, 30년 뒷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할머니가/ 책대여점을 하던 마흔의 어미가/ 24시간 편의점을 하던 아내가/ 반찬가게를 하던 이웃이/ 커피가게를 하던 고운 손이/ 우리의 처지가 이렇게 절박하다고/ 호소의 망루를 지었다// 돌아온 것은 대답없는 메아리였고/ 너무나도 신속한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이었다/ 6명이 죽고 십여 명이 다치고/ 또 수십 명이 구속되었다'(이하 생략) (송경동 '이 냉동고를 열어라' '녹색평론' 7-8월호).
정말 경찰과 정부는 아무런 죄가 없단 말인가? 대책 없는 철거민 정책, 아니 아예 철거민을 양산하는 부자 중심의 양극화 경제정책 입안자와 실행자는 그럼 누구인가? 소설 '25시'로 유명한 게오르규는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말한 바 있다.
시대 정신을 예민하게 읽는 그 시인이 아름다운 공동체의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를 노래하는 대신 냉동고 속의 주검을 절규하는 시대와 땅에 여전히 우리는 살고 있다. 혹여 이게 파시즘의 유령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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