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해 대구시는 '대구방문의 해' 행사를 비롯한 관광 인프라와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부족한 볼거리와 외국인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각종 제도와 환경 등으로 인해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을 내쫒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다른 시도에서는 체험관광 등 수요자 중심 프로그램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데 이대로 가다간 지역 관광산업이 전멸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외국인 눈에는 너무나 부족한 대구
14일 오후 6시 대구 동구 미대동 구암마을. 이곳 팜스테이 마을의 토마토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관광객 20여 명이 토마토를 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7일간 한국 여행길에 오른 싱가포르 관광단.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농촌 풍경에 웃음꽃이 가득했지만 이들의 일정은 웃음을 띠기에는 너무나 빠듯했다.
이들은 13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해 제주도에서 다음날 오전까지의 일정을 소화한 뒤 대구로 왔다. 오후 4시쯤 대구공항에 내리자마자 동화사를 둘러보고 이어 구암마을까지 찾았다. 두곳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1시간. 짧은 체험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 오후 8시 30분쯤에야 호텔에 도착한 이들은 15일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강원도 용평으로 출발했다.
이들의 일정이 빡빡한 데는 대구의 관광현실이 한몫을 하고 있다. 관광안내원 M씨는 "어쩔 수 없다. 대구에 볼거리가 없다 보니 1박 이상의 여행상품은 힘들다"고 했다. 그는 "많은 여행사가 대구에 잠깐 들르는 것은 대구시가 외국인을 숙박시킬 경우 여행사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 때문이다. 끼워넣기식으로 대구 일정을 잡는 여행사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대구 관광이 잠시 머무르는 수준으로 끝나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이 대구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싱가포르인 로렌스 탄(45)·애너 호(47·여)씨 부부는 "한류 드라마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만 막상 대구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팔공산 지역만 잠깐 돌다 보니 대구를 제대로 알리기에도 역부족이다. J. D. 주워노(56)씨는 "도로 시설도 좋고 팔공산 주변의 풍경도 아름다운데 잠시 들렀다가 가는데 대구가 어떤 곳인지는 알기 어렵다"고 했다.
코니 챙(24·여)·카리나 챙(21·여) 자매에게 "고향에 돌아가서 대구에 대해 알리고 싶은 게 뭐가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다시 오고 싶은 곳인지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고 대답했다.
막상 도심 쪽으로 눈을 돌려도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지역 여행사 직원 A씨는 "동성로에 가고 싶어도 마땅히 버스를 주차할 곳이 없다. 예전에 잠시 정차했다가 신고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외국인 쫓아내는 도심
지난해 대구 도심에서 문을 연 노보텔. 유명 호텔 체인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숙박시설이다. 하지만 대형차량의 통행이 제한되는 1차 순환선 안에 있어 호텔 앞까지 관광버스 진입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대형버스가 들어올 때마다 대구경찰청에 '제한구역 통행허가증'을 받아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노보텔 대구 관계자는 "전세버스 주정차를 위해 일주일에 세번씩 꼭 경찰청에 가지만 버스 한 대마다 별도로 출입증을 받아야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행정당국이 말로만 외국인 관광 활성화를 외칠 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살펴 달라"고 요구했다.
대구를 대표하는 약령시 관광에도 난관이 많다. 350년 전통의 한의약 시장이라는 소문을 믿고 많은 외국인이 찾고 있지만 막상 찾아가면 볼거리가 부족하고 도매상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여행객들이 직접 약재를 살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본인 타시로 분야(59)씨는 "사업차 대구를 자주 방문하면서 약령시를 여러번 찾았지만 물건을 팔지 않는 곳이 많아 어리둥절했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이에 대구시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한약도매상은 약사법 규정상 소매가 금지돼 있다. 대구시와 중구청 등이 TF팀을 구성해 약령시 활성화를 고민했지만 아직까지는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쇼핑할 곳도 마땅찮다.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쇼핑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대구는 쇼핑할 공간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푸념했다. 서문시장이 대표적인 쇼핑공간이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했다. C여행사 관계자는 "최근 일본, 중국 관광객 급증 추세에 맞춰 유통단지 전자관과 연계한 전자제품 할인판매 등을 계획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며 "도심에 면세점을 유치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에는 현재 대구공항 내 파라다이스 면세점이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공간이 좁고 제품 수가 부족해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인터불고 호텔 관계자는 "대규모 국내외 세미나 등을 유치해봤자 반나절 볼거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힘든 것이 대구 관광의 현실"이라며 "인센티브를 지불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단기적인 전략보다는 장기적인 관광 활성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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