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많은 무기를 만들었다. 돌멩이와 몽둥이에서부터 절대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까지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은 무기를 만들고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막강한 무력을 갖춘 자는 약자를 풍요로운 땅에서 쫓아냈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꼭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무력이 강한 나라는 문명도 발달했다. 풍요로운 땅과 많은 사람을 확보한 후에야 문명 발달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 국가, 극히 일부 시대를 제외하면 무력은 경제력 혹은 문명과 비례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다양한 신무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소라도 역사적 지식을 갖춘 독자라면 무기의 발달과 흐름에 따라 '개별 민족 혹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짚어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제국 로마는 왜 갑자기 쇠퇴했을까? 훈족의 압박으로 서쪽으로 밀려난 고트족과의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이 전투에서 로마 황제 발렌스와 부황제 데키우스를 비롯해 주요 상급 지휘관이 모두 전사했다.
로마 쇠퇴의 원인이 됐던 이 전투의 참패 원인은 말의 등자(말 안장에 매달아 발을 걸치게 해두는 승마기구)때문이었다. 그때까지 로마 기병에는 등자가 없었고 기병의 발은 덜렁거렸다. 로마 군대는 전투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등자에 발을 고정시키고 창과 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고트족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창을 든 로마 기병은 적을 향해 창을 찌르는 순간 그 충격에서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창을 놓아야 했다. 그러나 등자에 발을 얹은 고트족은 창이 부러지지 않는 한 계속 쓸 수 있었다. 또 등자에 발을 안정시킨 고트족 기병은 더 무거운 갑옷을 착용하고 더 무거운 무기를 썼다.
활을 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트족은 말 위에서 앞과 뒤, 옆의 적을 자유롭게 쏠 수 있었다. 로마군이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 팔로 말 고삐를 잡아야 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등자의 등장이 제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이다.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은 결국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은 꾀를 써서 조조 군사의 화살 10만개를 거두어갔다. 당시 화살 10만개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조조 군사는 단 반나절 전투에서 공들여 만든 화살 10만개를 헌납했다.
이처럼 활이나 투창은 충분한 살상력을 갖고 있지만, 적군이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아군이 쏜 화살이나, 아군이 던진 창을 적군이 다시 쓸 수 없도록 만드는 기술이 중요했다.
고대 로마 군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회용 투창인 필룸을 만들었다. 필룸은 창날이 창 전체 길이의 1/3 혹은 1/4에 해당할 만큼 길었다. 한 번 던지면 명중 여부에 관계없이 창날이 구부러졌다. 적들은 아군이 던진 창을 주워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현대인의 기준에서 보면 조악하기 그지없지만, 몽둥이도 한때는 신무기였다. 별것도 아닌 등자가 팍스로마나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별것도 아닌 필룸이 적을 무력화 시켰다.
무기는 인류에게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것이 사실이지만, 절박한 필요에 의해 탄생한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책 '역사를 바꾼 신무기'는 인류가 발전하면서 필요로 했던 것과 성장의 역사를 확인하는 기회가 듯하다. 292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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