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대사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뭐니뭐니해도 백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서기를 보면, '백제 근초고왕대 405년에 왕인(王仁) 박사가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왔고, 성왕(聖王)대 552년에 노리사치계(怒利斯致契)가 불교를 처음으로 전파했다'고 되어 있다.
660년 8월 백제 사비성이 함락되고, 663년 6월 백마강의 마지막 결전 때까지의 3년간에 수천의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이들 대부분은 지식 계층이었다고 한다. 이들에 의해 새로운 농기구와 토목기술, 불사, 불경, 신의술인 침술, 고대 국가를 형성하는 율령체제 등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대부분의 백제문화가 유입되어 일본은 바야흐로 새로운 신문명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일본으로 건너간 당시의 백제인들은 크게 우대되어, 백제의 직위를 그대로 인정받아 관료나 장군 등으로 임명되었는데, 일본 정부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행정조직을 16관위에서 20관위로 확대 개편까지 하였다. 당시 일본정부의 요직인 국방대신, 문부대신 등을 모두 도래한 백제인들로 임명한데서 생겨난 말이 '아마쿠다리'(天下り) 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란 뜻으로, 오늘날에도 고급 관료가 퇴직하고 관련기관의 간부 등으로 내려가는 것을 '아마쿠다리'라고 한다. 그 당시 일본의 수도는 시가현(滋賀縣) 오오미(近江-지금의 교토 근처)였으며, 673년에 아스카 지방으로 천도하고, 또다시 710년에 '나라'로 이전하는데 이때부터 784년까지를 '나라(奈良)시대'라고 한다.
'나라'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줄임말로서,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이곳을 백제 유민들은 '나라'라고 불렀고, 후에 한자의 아데자를 붙여 '나라'(奈良)가 되었다. 백제 유민들은 사라진 조국 백제를 '큰 나라'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변해서 '쿤나라→구다라'(百濟)가 되었고, 백제를 '구다라'라고 하는 것은 이에 기인한다.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유민들은 신라(新羅)는 '시라기', 고구려(高句麗)는 '고쿠리'라고 하면서도 백제(百濟)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하쿠사이'라 하지않고, '큰 나라' 즉 '구다라'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그들의 집념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말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고유한 풍습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 형제가 있을 때 큰집은 조상에 대한 제사나 모든 것을 주관하기 때문에 재산을 전부 물려주므로 다른 형제들 보다 넉넉하고 많은 것을 내포한다.
따라서 지금 백제 유민들이 살고 있는 일본이 '나라'라면, 백제는 맏형격인 '큰 나라'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 '구다라'다.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라는 말은 직역하면 '백제에 없다'가 되는데, 이 말뜻은 '시시하다'이다. "좋고 훌륭한 것은 다 백제에 있는데, 이것은 백제에 없어. 그러니 시시한 거야"라는 말이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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