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사교육 죽이기보다 공교육 살려야

김선응 대구가톨릭대 교수, 네거티브 정책보다 포지티브 정책 써라

1960년대 초반에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고려대총장,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상협 씨는 70, 80년대 젊은이로부터 존경받는 교육자이자 정치학자였다. 장관이나 총리로 불리는 것보다 총장으로 불리기를 좋아한 김상협 씨가 문교부 장관 재임 시에 유명한 일화 하나. 당시 김 장관은 재임 중 교육정책을 바꾸거나 새로운 정책을 거의 펴지 않았다. 이를 본 당시 윤보선 대통령은 "장관은 왜 일을 하지 않소?" 라며 꾸짖자 김 장관은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이기 때문에 정책을 자주 바꾸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새 정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물론 오늘날의 교육 수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당시 교육 환경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국민의 교육열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여권에서 쏟아내는 교육 정책을 보면 국민들이 현기증이 날 정도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제6정조위원회, 여의도연구소, 당 밖에서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제각각 교육 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교과부는 공교육 살리기에, 한나라당과 미래기획위원회에서는 사교육 죽이기에 골몰하고 있다. 거기다가 사교육을 죽이기 위해 이미 고교 내신을 9등급 상대평가에서 참여정부가 실패하여 폐기한 5등급 절대평가로 바꾸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교사들의 내신 부풀리기가 성행하게 되고, 대학은 고교내신을 믿지 않고 우수 학생을 뽑기 위해 수능이나 논술시험(본고사)의 비중을 높일 것이다. 이는 또 수능이나 논술과외로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의 창궐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명박 정부의 '가난의 대물림'과 연간 30조 원에 이르는 사교육비의 부담에서 서민들을 구해야 한다는 정책에는 이해가 가지만 지난 대선에서 '교육의 자율과 경쟁'으로 수월성 제고를 통해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던 공약(公約)은 空約(공약)으로 돌변하여 규제와 통제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교육 대책이 강할수록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지는 이유는 뭘까?

사교육이 줄지 않는 이유는 교육의 '임기응변식' 대책과 '무원칙' 때문이다. 내신반영 방식, 특목고 입시와 같은 정책도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와 대증요법에만 매달린 탓에 오락가락하고, 뒤범벅이 되기 일쑤다. 교육 철학보다는 경제나 정치논리, 교육 포퓰리즘 등 교육외적 요인에 휘둘려서 수시로 바뀐 사교육 대책이 되레 사교육 팽창의 원인이 되어 버렸다.

"우리 학부모들은 거창한 교육정책을 원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가르쳐 주기만을 원할 뿐입니다" 라는 학부모회 간부들의 소박한 소망에 교육 정책 입안자들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은 지금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공교육 강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영국은 5년마다 교사 자격증 갱신제도를 도입하고, 가까운 일본에서는 '유토리(여유)' 교육의 폐해를 인식하여 2000년부터 10년마다 '교원 면허 갱신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교육 개혁에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여 실력 있는 교사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우리끼리 경쟁이 아니라 또래의 외국 학생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시대가 왔다. 세계 수준의 학생을 키우기 위해서는 세계 수준의 교사가 필요하다. '그 학교의 수준은 교사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교사의 사명감과 전문성을 높이고 경쟁을 유도하는 공교육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사교육비를 줄이는 유일한 방안이다.

여권은 김상협 전 장관의 교육 철학처럼 당초 공약했던 '자율과 경쟁'에 기반을 두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제각각의 정책이나 오락가락 정책을 지양하여 일관되게 공교육 경쟁력 강화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공부하러 학원에, 잠자러 학교에'에서 '공부하러 학교에'로 자연스럽게 바꾸어질 것이다.

따라서 사교육을 죽이는 네거티브(소극적) 정책보다는 공교육을 살리는 포지티브(적극적) 정책으로 대한민국 교육을 살려야 할 것이다.

김선응(대구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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