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6년 전쯤 파리에 갔을 때다. 한국인 화가들과 저녁을 함께했는데 한 분이 '재미있는 미술관'이 있으니 가보면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당시 대구 수성구 삼덕동에 들어설 대구시립미술관 입지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던 때라 안목을 넓힐 수 있을까 싶어 에펠탑 맞은편 강 건너에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 프랑스 문화부가 운영방식을 공모해 2002년 개관한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1937년 만국박람회 때 일본 산업관으로 쓰여졌기에 붙여진 이름)였다.
조용하고 품위있게 그림을 감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온통 시끌벅적했다. 전시실 한쪽에는 기다란 식탁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이곳을 점심약속 장소로 잡아 친구들끼리, 연인들 간에 실컷 떠들고 놀다가 좀 시들해지면 그제야 작품을 둘러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낮에 산책 삼아 방문해도 좋고 저녁 때 할 일이 마땅찮아 시간 보내기 위해 찾아도 좋은 곳이었다. 딱딱하고 어려운 현대미술을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하려면 이런 개념이 최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젠 생활과 예술을 결합시킨 명소로 자리매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미술관과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전시실이 오버랩될 때가 있다. 문화예술회관을 평일 대낮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전시실이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전시 관계자와 에어컨 바람을 쐬러 오는 노인들을 제외하면 순수 관람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말에는 가족단위 관람객과 두류공원에 왔다가 들르는 이들이 많지만, 일요일 오후가 되면 서둘러 그림을 철거하는 통에 기분을 잡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관한 지 20년 된 문화예술회관이야 그렇다고 치자. 내년 개관을 앞둔 대구시립미술관의 미래도 불 보듯 뻔하다는 게 문제다. 차량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외진 곳인데다 번듯한 것 같지만 아무런 특징 없는 건물 하나 덜렁 지어놓고 관람객을 모으기 힘들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건축비에 진입도로 건설비까지 합해 1천억원 가까운 돈을 투자해 놓고 과연 전시 비용과 작품 구입비를 매년 예산에 얼마만큼 반영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이런 형태라면 문화예술회관의 기능과 전혀 달라질 게 없다.
몇 년 전 고위 공무원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역 화가들에게 그림을 기증받고 이미 갖고 있는 그림을 돌려가면서 전시하면 됩니다." 대구문화를 이끌고 지원하는 대구시 간부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너무 한심하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전시와 기증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화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솔직히 시립미술관의 입지와 설계 과정을 놓고 아직까지 뒷말이 끊이지 않는 것도 공무원들의 문화수준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요즘 뮤지컬, 오페라, 연극 등의 제작에 필요한 연습실을 대여해주는 '문화창작교류센터' 입지 문제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와 중구 수창동 구KT&G연초제조창 등이 후보지로 꼽히고 있지만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대구시의 접근 자세다. 아직까지도 문화 인프라를 대구시정의 액세서리나 부속물 정도로 여기는 수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껏 대구시의 정책 틀에 억지로 끼어맞춰 문화를 재단하거나 고위 공무원의 취향이나 정서에 따라 문화를 다뤄왔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문화정책은 한두 명이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정치'가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존재 가치가 있다. 사람이 모여야 문화가 살아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식견이 부족하다면 귀라도 열어놓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박병선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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