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육상 숙박을 러브호텔서?

대구시 전수조사 통해 공식업소 지정 추진에 우려 목소리

직장인 박모(33·여)씨는 며칠전 대구를 방문한 미국인 친구 2명의 숙소를 구하려다 낯이 뜨거웠다.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구시내 한 모텔을 찾았지만 막상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동성끼리라도 한 침대에서 잠자지 않는 서양 문화를 아는 박씨는 난감했다. 박씨는 "장기 투숙이 되지 않는데다 친구들이 테이블 위에 놓인 피임도구와 성인용품을 집어들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고 푸념했다.

2010년 세계소방관경기대회를 비롯,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2년 세계곤충학회,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줄줄이 앞둔 대구의 숙박 인프라개선이 시급하다. 대구시는 러브호텔을 대상으로 공식숙박업소 지정을 추진하는 등 객실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트윈침대나 숙박시설 내 조식 제공 등 외국인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서비스는 개선되지 않고, 관광호텔 육성 등 인프라 개선 없이 객실 숫자 확보에만 연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러브호텔 10곳 중 3곳은 시설 양호=대구시는 이달 초 대구시내 숙박시설 중 객실 수 20개 이상, 연면적 1천㎡ 이상인 숙박시설 중 호텔을 제외한 1천60곳을 대상으로 위생 상태와 편의시설, 접객실 개방 여부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위생 서비스 수준에 따라 최우수, 우수, 보통 등 3등급으로 분류했다. 조사 결과, 최우수등급 69곳(6.5%), 우수 232곳(21.9%), 보통 759곳(71.6%) 등으로 나타나 10곳 중 3곳은 전반적인 시설과 서비스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우수 등급 이상 숙박업소 가운데 100여 곳을 현지 실사를 거쳐 대구시 공식숙박업소로 지정할 예정이다. 아울러 공식숙박업소로 지정된 곳은 대구시 관광안내도와 안내 책자 등에 등재하고, 숙박업소 안내 책자를 만들어 배부하기로 했다. 또 업소 입구에 공식숙박업소를 표시할 수 있는 안내판을 제작해 부착할 계획이다.

◆업주들은 외면=정작 업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러브호텔을 외국인 손님을 위한 숙박시설로 바꿀 대책이 전무한 탓이다. 트윈침대와 호텔식 조식, 장기 투숙 등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기반 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간판만 바꿔선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달서구의 경우 조사대상 모텔 80곳 가운데 트윈침대가 있는 곳은 3곳에 그쳤고, 수성구 모텔 77곳 중 트윈침대가 설치된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결국 시설 개선 없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공염불인 셈이다.

숙박시설 업주들은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 보장이나 지원책이 없는 상태에서 시설 투자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실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러브호텔의 특성상 장기 투숙을 선뜻 받아들이기도 힘들다고 했다. 대한숙박업중앙회 대구시지회 관계자는 "2007년 10월 제46차 동양 및 동남아 라이온스대회가 열릴 당시에도 외국인 손님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며 "대구시와 지원책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신청 업소를 중심으로 공식숙박업소를 지정하면 대외 홍보와 함께 '소상공인 저리대출'을 알선하는 등 시설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객실 확보보다 관광호텔 육성이 시급=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선호도 및 서비스 요구안 등을 분석하고 모범 업소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유인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구의 경우 관광호텔은 28곳이지만 대부분 시설이 노후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따라서 민자 유치 등을 통해 경쟁력 있는 관광호텔을 육성하고, 기존 관광호텔의 시설 개선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강인호 계명대 교수(관광경영학과)는 "대구엑스코가 전시 산업 유치실적이 전국 4위에 오르는 등 국제 회의·전시 산업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이고, 안동과 경주 등 인접 관광지와 연계하면 대구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러브호텔로 객실 수만 확보하려하지 말고 관광호텔을 지원해서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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