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더위와 귀신

스산한 달빛이 가득한 공동묘지. 한 줄기 바람이 휑하니 불면 천천히 무덤이 갈라지고 그 속에서 원혼이 몸을 일으킨다. 소복에 핏기 없는 여인의 얼굴이 갑자기 화면에서 튀어나올 듯 클로즈업되면 그야말로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선다. 1960년대의 대표적인 공포영화였던 '월하의 공동묘지'를 비롯해 TV드라마 '전설의 고향' 등 여름철 납량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원혼들의 출현 방식은 이제 너무 익숙한 영상 문법이다. 그래도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지 않고 한여름 무더위를 쫓는 데는 이 귀신보다 나은 것은 없는 듯하다.

그 까닭은 공포를 느끼고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공포를 느낄 때는 머리 양쪽 옆 덮개부에 있는 뇌의 편도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신경계 중에서 감정, 정서, 본능적 충동에 반응하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뇌 변연계의 일부인 편도체는 공포에 대한 자극과 반응을 연결한다. 뇌에서 주요 감각들이 집결하는 시상핵이 공포를 감지하면 반드시 그 자극을 전달하는 곳, 또한 편도체이다. 그래야만 무서움을 탈 때 동공이 확대되고 혈관이 수축하며 몸의 털이 곧추서면서 식은땀이 나는 몸의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포 체험은 이러한 생리적 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켜 체온을 적당히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쥐의 편도체를 제거하면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원숭이의 편도체를 떼어내면 뱀을 손으로 잡고 불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무덥다는 大暑(대서)다. 장마도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태세다. 적어도 한 달간은 무더위와 친해야 한다. 어릴 적 외가에서 모깃불을 피워놓고 듣던 외할머니의 괴담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내거나 공포영화를 봐도 좋을 듯싶다. 내일부터는 대구 스타디움 일대에서 '제6회 호러공연예술제'도 열린다. 편도체를 자극할 여러 귀신을 만난다니 벌써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만, 난투극 속에 미디어법을 통과시킨 여야 국회의원들의 작태가 짜증스럽다. 국가 예산이 허락한다면 국회의원들의 뇌 단층촬영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들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할 편도체 부위가 덜 발달됐거나 아니면 일반인들보다 작을지, 혹 모를 일이다.

우문기 교정부차장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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