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거운 책 읽기]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용우 /역사비평사)

끝나지 않은 역사 청산,역사 바로 세우기의 숙제

●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숙청과 기억의 역사, 1944~2004/이용우 /역사비평사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이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 청산할 과거가 있었던가? 하고. 프랑스가 무척이나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청산하고 싶어하는 과거사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비시정권 시절 4년간을 말하는 것이다. 비시정부 시절이 끝나고 프랑스가 1944년 해방이 된 후 비시정권에 협력했던 세력과 시대에 대한 청산 요구가 무척 거셌다. 이 책은 그 혼돈과 아픔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해방 전후 프랑스에서는 나치독일에 협력한 사람들을 숲속과 거리에서 응징하곤 했다. 주로 민중에게 원성을 산 악질경찰이나 관료가 표적이 되었다. 독일군 병사와 관계를 맺은 여성의 경우 삭발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응징은 민중에 의한 자발적 처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사법적 과정을 밟기 이전의 과도기적 단계이기도 했다. 그 후 재판을 통한 처벌이 이어졌다. 부역자 중 문인과 언론인이 가장 심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재계 인사나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은 부역 정도에 비해 처벌이 약했다고 한다.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 면에서 문인과 언론인을 다른 직업보다 높게 본 것이다. 레지스탕스에 적극 참여했던 알베르 카뮈의 경우 적극적이고 더 과감한 숙청과 처벌을 요구했고, 동일하게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지만 프랑소와 모리악의 경우 숙청을 반대했다. 두 사람의 논쟁이 유명한데 결국 카뮈가 논쟁을 접었다고 한다. 철저하고도 과감한 숙청이라는 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정작 처벌받아야 할 고위직, 책임질 지위에 있었던 자들은 교묘히 처벌을 모면하고, 불가피하게 나치에 협력했던 하위직이 처벌을 받는 상황에 환멸과 절망을 느낀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친나치행위를 했다며 기소된 이가 있었다. 반세기 만의 부역자 처벌, 즉 1970년대 말부터 잇달은 기소와 1990년대의 재판은 반세기 전의 '반민족행위'와 달리 '반인륜범죄'라는 죄목을 내걸게 된다. 반인륜범죄는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을 처벌하기 위해 도입된 것인데, 1942년 프랑스 경찰이 1만3천152명의 외국계 유대인을 체포하여 밸디브라는 동계경륜장에 수용한 밸디브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1만2천884명이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학살당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절멸정책에 적극 협력한 주역들이 반인륜범죄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과거사 청산에 대해 미흡하다고 여기며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불만부터 "처벌이 너무 약하다, 불철저하다"는 비판까지. 시간이 흐르자 숙청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이 처벌이 너무 가혹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게 됐다고 한다. 비시정부 치하에서 벌어졌던 일들과 해방 후 벌어진 일련의 부역자 숙청 과정이 프랑스라는 나라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면서 역사교과서를 통해 후세를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않았다고 한다. 비시정부와 해방 전후 부역자 숙청 등에 대한 객관적인 책이 미국의 한 역사가에 의해 최초로 출간됐고, 그 책이 프랑스에서 17년간이나 출간되지도 못할 만큼 프랑스 내에서 그 시절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다시피 한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반인륜범죄들이 차례로 기소되고 처벌을 받으면서 프랑스인들은 그 사건들을 비로소 객관화시키게 되었다. 특히 당시를 살지 않았던 전후 세대들이 그 일에 적극 나섰고, 역사교과서에도 당당히 싣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프랑스만큼도 과거사 청산을 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에 앞장섰던 신문이 지금도 최대의 신문사로 군림하고 있고, 친일에 앞장섰던 이들의 후손이 조상들의 친일행위의 대가로 호위호식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전범을 체포하고 재판정에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역사를 제대로 기록이라도 하자고 과거사위원회도 만들고 역사교과서도 새로 쓰고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러한 노력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정부 때 만들어진 과거사위원회들이 할 일을 잔뜩 남겨둔 상태에서 곧 해산될 운명에 처해 있기도 하다. 정권에 따라 끊임없이 역사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온 국민이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이만큼은 인정하자는 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바로 세우는 일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신남희(새벗도서관 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