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5시.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자욱한 것으로 보아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부을 듯한 기세다. 시장입구는 방천시장 예술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음을 암시하는 색 바랜 플래카드만이 초라하게 나풀대고 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여전히 장터라기보다는 한산한 시골거리 같은 느낌이다. 불과 달포 전만 하더라도 '예술 깃든 재래시장, 희망을 꿈꾼다'느니, '재래시장에 예술의 물결', '전통 재래시장에 예술꽃 활짝' 등 각종 매스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난장판이라고 하기엔 생뚱맞을 정도로 조용하다. '혹시 손님이 아닐까'하는 상인들의 관심어린 시선만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어물전 위를 윙윙대는 파리들, 시장 안은 어디서나 파리들이 극성이다.
빈 점포는 여전하다. 몇 달 전, 시장을 가득 매운 예술가들이 회화, 공예, 설치, 판화, 사진 등 창작활동에 열중하던 모습은 이제 홍정근 공예가의 작업실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고등어와 예술이 1년 이상 함께할 거라며 열을 올리던 비평가들 역시 사무실에서 자리를 비운 지 오래된 느낌이다. 이곳 도우미인 듯해 보이는 몇몇 대학생들이 작품 철거를 위해 시장 안을 분주히 배회하고 있다. 시장 벽면이나 셔터문에 남아 있는 거리벽화 역시 을씨년스런 시장 분위기로 인해 그 작의와 가치가 왜곡될까 염려스럽다.
할매순대, 현미다방, 미진분식 등 빈 점포의 벽면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오래된 전단지 스티커들, 그 전위예술 같은 끈질길 삶의 흔적만이 참된 예술품처럼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순간, 아직도 이곳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한 젊은 예술가가 '상해반점', 그 낡고, 지저분하고, 잊혀진 과거의 흔적들을 소니 캠코더로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예술과의 3개월 동거'는 딱 3개월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방천시장을 대구 예술의 1번지로, 그렇게 값싼 고등어와 값진 예술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겠다던 야심 찬 꿈과 기획은 결국 폐허의 흔적으로 되돌아와 세인의 관심과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예술과 자본이란 고귀한 거름이 잔뜩 흩뿌려졌건만, 꽃과 생명으로 가득한 꽃밭이 아니라 왜 다시 저위와 몰락의 위험만이 가득한 폐허가 되어 버렸을까? 이 의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반성이 뒤따라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애정과 관심을 가졌던 각종 언론매체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대구시민 모두의 몫인 것이다.
우광훈시민기자 ilbana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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