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기회복 조짐' 보인다는데 … 극빈층 되레 쏟아진다

월세 밀리고 전기·수도도 끊기고…차상위계층 추락 정부대책 한계

경기가 회복조짐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전기료나 수도료, 도시가스료 등을 제때 못 내는 가정이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늘고 있다. 차상위계층의 일자리인 건설업계와 식당 등이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영(가명·51·여)씨는 지난달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다. 7년 전 남편이 집을 나가 혼자 3남매를 뒷바라지해 온 박씨는 식당일 등 닥치는 대로 일했으나 올 초부터 신경성 마비증상이 오면서 더 일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큰아들(30)이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한 달에 100만원 정도를 벌어왔지만 최근 2, 3달간은 일감이 없어 놀고 있다. 박씨는 "빚에다 수입이 끊기면서 3개월째 월세도 못 주고 있다"며 "돈 몇 만원이 없어 전기, 수도가 끊길 지경"이라고 했다.

두 딸을 둔 김모(55)씨는 3년 전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몸을 다친 뒤 일을 나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뚜렷한 병명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격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내가 식당일을 해 생계를 잇고 있다. 김씨는 "몇 달째 집세를 못 냈고 수도 사용료도 3개월째 못 내고 있다"며 "그나마 단수처리는 안 됐지만 돈을 언제 낼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6월 말까지 대구에서 상수도 요금미납으로 단수를 당한 가정은 424가구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264가구)보다 160가구나 늘었다. 한 달 이상 상수도요금을 내지 못한 가구도 3만5천916가구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수도본부 관계자는 "한 달 이상 요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단수 처리가 원칙이지만 가정형편상 못 내는 가구에 대해 몇 달씩 유예기간을 주고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오랫동안 요금을 못 내는 가정이 많다"고 말했다.

도시가스 역시 3개월 이상 요금을 납부하지 못한 가구가 1만 가구를 넘어섰다. 지난 4월 기준 도시가스료를 3개월 이상 연체한 가정은 1만7천269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5천389건보다 1천880건(12.2%)이 늘었다. 도시가스료 3개월 이상 연체금액도 11억5천400여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3개월 이상 연체금액은 10억3천600여만원이었다.

전기료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에서 6월 말 현재 주택용 전기체납가구는 6만1천545가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91가구(1.3%)가 늘었다. 한 달 연체가구는 3만9천538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7천697가구보다 1천841가구가 늘었다. 6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도 518가구나 됐다.

건강보험료도 징수율이 94.5%로, 대구 전체 80만 가구 중 4만4천 가구가 제때 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보험료를 장기간 내지 않을 경우 병원진료 제한 등의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에 가급적 제때 내려 하지만 정말 돈이 없어 장기간 연체하는 가입자가 많다"고 말했다.

경북대 구동모 경영학부 교수는 "수도나 전기 요금조차 낼 수 없는 극빈층이 늘어난다는 것은 누적된 불황 여파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가 '희망근로' 같은 한시적인 일자리만 나열해서는 서민들의 빈곤탈출이 어려운 만큼 물가안정과 가계부채, 신용불량자 해결, 기업투자 활성화 등 특단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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