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다. 봉사는 짧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도 많고, 아름다운 봉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 봉사를 제2, 제3의 인생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 마음은 있지만, 몸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터.
전직 고교 호랑이 영어 선생님 송택균(62·대구시 수성구 수성동)씨, 영문과 출신 영어 강사 성문숙(45·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씨. 이들은 이제 아름다운 봉사를 시작했다. 송 전 교사는 33년 교직을 퇴임한 뒤 올 초부터 의료통역 자원봉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성씨는 전업주부 생활을 접고 영어강사 겸 홀트아동복지회 통역 자원봉사를 2년째 하고 있다.
송 전 교사는 재직시절 제자 한명 한명의 이름과 성격, 가정형편까지 보살피는 아버지 같은 이였다. 고교 때 제자 민병우(50) 계명대 동산병원 부원장은 "선생님은 엄하고 무서운 분이지만, 제자들을 따뜻하게 몰래 챙겨주는 참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송 전 교사는 가르치면서도 항상 배우는 '선생'이다. 영어에서 의료영어, 중국어도 지금까지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의료통역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동산병원 국제의료센터에서 외국인 환자 한명당 1시간가량 수납안내부터 진료 예약까지 꼼꼼히 챙긴다. 외국인 환자들은 송 전 교사와 헤어질 때 진심으로 '땡큐'라고 한다. 그의 꿈은 봉사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성씨는 계명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을 다녔다.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그녀는 욕심이 많다. 지역사회에 기여하고픈 마음도 컸다. 이 때문에 2년 전 친구와 함께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았다. 자원봉사 자리를 알아본 결과 자신의 장기인 '영어회화'를 적용할 수 있는 통역봉사를 택했다. 전업주부에서 '강사와 봉사'란 '투잡(?)' 직업인으로 변신한 성씨는 지금 행복하다.
■동산병원 영어 의료통역, 송택균씨
▷따뜻한 호랑이 교사
-재직시절 별명이 '깨창'('깨 버린다'의 속어)'이라고 하던데요?
"(옆에 앉은 민병우 부원장이 대신 말을 받았다.) 고교 1년 첫 영어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너희들 공부 열심히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깨창 낼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학생들끼리 '깨창'으로 불렀지요. 선생님은 아셨습니까?" "알기는 알았는데…"(송 전 교사는 싱긋이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교직에 몸담게 된 계기는.
"중고시절 영어를 좋아해서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외국어를 활용해 직업을 선택하려고 했는데, 군대에서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육체적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는 일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몸 대신 머리와 마음으로 가르치는 교사를 선택했습니다."
-70년대에 '노래 수업'을 했다고 하던데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영어에 더 친숙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요. 그 때문에 부르기 쉬운 '클레멘타인' 등 미국 포크송 가사를 칠판에 적은 뒤 노래를 부르며 영어와 가까이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참된 인간
-성적 위주의 교육현실인데요?
"성적보다 삶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생이든, 제 자식이든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라'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습니까?
"수학여행을 며칠 앞두고, 한 제자가 도심 '폭행사건'에 연루됐습니다. 당시 사건을 학교에 보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만약 그 사건을 보고한다면, 곧바로 퇴학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교칙'을 따르지 않고, '모른 척'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조치가 제자의 삶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지요."
"교칙, 규칙, 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사회가 정해놓은 다양한 규칙이나 법 등도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 잣대는 분명히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바람직한 교사상은.
"열정과 전문성이라고 봅니다. 직업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학생들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자기 분야에 대해 잘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영어든, 국어든, 수학이든 전공에 대한 전문성은 기본이겠지요."
▷배우고, 또 배우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했나요?
"영어서적과 잡지를 꾸준히 읽었습니다. 책이 전문성의 길잡이라고 봅니다. 미국 등지로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여행을 통해 사람과 문화를 만나고, '현장 언어'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요?
"대학시절 영문학 서적뿐 아니라 시사 잡지를 많이 읽었습니다. 타임, 리더스다이제스트 등이었지요. 술술 잘 나가다가도 '의료칼럼'을 읽을 때면 전문용어 때문에 해석이 종종 막혔지요. 그때부터 의료 영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로 있으면서 영어와 함께 의료와 관련한 전문성을 얻고 싶었습니다. 대학원에서 '보건관리'를 전공한 것도 의료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의료통역 봉사로 제2의 인생
-의료통역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퇴임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제가 가장 잘 알고, 또 잘하는 게 의료 분야 영어라고 생각해 알아보니, 의료통역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주로 어떤 봉사를 하나요?
"오전 9시부터 국제의료센터를 찾은 외국인 환자를 안내합니다. 어떤 유형의 환자인지 파악한 뒤 수납창구, 다음엔 혈액검사와 X-레이 촬영 등을 거쳐 진료대기실로 갑니다.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때 동석하고, 진료를 마치면 예약날짜를 같이 잡고, 다시 진료센터로 돌아와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설명합니다. 전문의들이 대다수 외국어를 잘하기 때문에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추가적인 의문사항이 있으면 아는 데까지 설명합니다."
-힘들지 않습니까?
"지역 미군부대원을 비롯해 외국인 환자들이 주로 찾는데, 대기실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처음에 어디에 사는지, 직업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양국 간 문화차이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령 미군병사일 경우 '라이언 일병 구하기', 고향이 시애틀이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 등등. 특히 1~2시간 같이 다니며 진료를 끝내고 헤어질 때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보람을 느끼지요."
-앞으로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자원봉사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지역사회를 위해 써 먹고 싶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 영어 통역, 성문숙씨
성씨는 계명대 영문과를 졸업한 석사.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전업주부에서 3년 전 영어 강사로 변신했고, 2년 전부터 홀트아동복지회 봉사활동으로 영어통역을 하고 있다.
"아이고, 이래 훌륭하이 커줘서 고맙다. 꼭 좋은 사람이 되거라. 니가 다음에 또 한국에 오거든 꼭 내한테 오너라. 내가 그때까지 사꾸마."
17일 안옥희(63)씨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1997년 이맘때 3개월여를 품에 안고 키웠던 핏덩이를 이역만리 미국땅으로 보내고 흘렸던 슬픔의 눈물은 이날 기쁨으로 바뀌었다. 12년 만에 어엿한 청년이 돼 한국땅을 다시 밟은 이정기(미국명 Andy Kopel·16)군을 눈앞에 두고서다. 30년째 위탁모 생활을 하고 있는 안씨. 그저 안고 눈빛만 바라봐도 하염없이 좋지만 영어를 전혀 못해 답답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안씨의 진한 대구사투리가 이군에게 전달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진한 그리움을 전하려는 안씨 옆에는 통역을 맡고 있는 성문숙씨가 있기 때문이었다.
성씨는 '마음 전달자'나 다름없었다. 홀트아동복지회의 영어 통·번역을 맡고 있는 성씨도 이런 만남을 볼 때마다 마음이 미어지지만 침착하게 서로의 말을 통역, 전달해야 한다. 자원봉사라고 해서 대충해선 안 된다. 위탁모와 입양아 간 떨어져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언어의 차이도 크기 때문이다. 성씨가 있기에 안씨도 푸근하다.
"얼마나 고마우이. 나는 주끼고 싶어도 못 주끼는데."
성씨가 통·번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은 2년째. 갖고 있는 능력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는 게 성씨의 말이다. 이날 대구를 찾은 이군의 가족들은 10명. 미국 텍사스주에서 온 가족들 중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성씨가 통역을 담당한 시간은 오전 11시 20분부터 30분 남짓이었지만 통역에 필요한 입은 하나로 부족했다.
서신번역은 이보다 더 횟수가 많다. 주로 편지가 대부분. 세심하게 번역해야 한다. 사람의 감정이 자칫 잘못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성씨의 딸, 김윤정(19·혜화여고 3년)양도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았다. 간간이 딸아이에게 번역을 맡겼기 때문이다. 해외입양으로 모국을 떠났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는 동년배의 편지는 특히 딸아이에게 맡긴다. 인성교육을 위해서다. 김양은 대학에 들어가면 사회복지기관에서 봉사하겠다는 마음도 일찌감치 먹었다. 김양은 "편지를 번역할 때 입양아들이 모국을 그리워하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며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잘 자라준 이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성씨도 "입양기관에서 필요한 입이 돼줄 수 있는 건 큰 기쁨"이라며 "통역은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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