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절로절로
송 시 열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청산이 그리우면 어이하리요, 그 청산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 듣고 싶으면 어이 하리오. 시멘트 벽 속에 갇혀 청산과 계곡 물소리 그리며 이 시조를 읽어보면, 몸은 도시에 있어도 마음은 청산의 어느 바위 위에 앉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한번은 그냥 읽고, 좋아서 또 한번 읽고, 지그시 눈 감고 세번 읽으면 그야말로 절로 암기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작품이다. 김인후(金麟厚) 작으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김인후의 '하서집'(河西集)에 '자연가'(自然歌)라고 해서 '청산자연자연(靑山自然自然) 녹수자연자연(綠水自然自然) 산자연수자연(山自然水自然) 산수간아역자연(山水間我亦自然)'이라는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심재완의 정본 시조대전에는 우암의 작품을 정본으로 김인후의 작품을 '이문'(異文)으로 다루고, 작가가 이황(李滉)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다는 주석을 달고 있다.
글자 수로 따지면 전체 마흔다섯자가 되는데, 그 중에 '절로' 라는 단어가 아홉 번이나 나온다. '절로'라는 낱말이 반복되면서 물 흐르는 소리처럼 가락이 흘러간다. 그 묘한 흐름이 결코 가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까지 깊게 만들어 내니 시의 맛을 한결 더한다. 얼핏 보면 말장난을 부린 듯하지만, 운율을 음미하면서 읽어가면 얼핏 본 것을 미안해 해야 할 만큼 엄숙미가 흐른다.
누구라도 읽기만 하면 저절로 이해가 되고 그 내용을 수긍하게 될 것인데, 좋은 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흐름대로 살고 늙는,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는 옛 풍류객의 호방함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여기에 무슨 집착이 있는가? 집착이 없으니 절로 메인 데가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얻는 삶의 여유,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을 긍정하게 된다. '순리를 거슬러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는다면 오독이 될까. 늙지 않으려고, 아니 늙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는 현대의 우리들을 참 쑥스럽게 한다.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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