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잖은 세월을 함께 살아온 어느 부부가 모처럼 예루살렘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부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만 여행지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슬픔과 시름에 잠긴 남편에게 현지의 장의사가 물었다.
부인의 유해를 한국으로 운구하려면 5천달러가 들고 예루살렘에 매장할 경우에는 500달러의 비용만 부담하면 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유해를 고국으로 옮겨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는 장의사에게 거듭 묻는 말이 뜻밖이었다.
"여기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곳이 맞지요…?" 혹여 죽은 아내가 부활이라도 할까 두려웠던 것일까. 마누라가 그렇게도 무서웠을까. 하긴 엄처(嚴妻)와 악처(惡妻)타령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의 원조로 꼽히고 있으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도 세계 3대 악처의 반열에 올라 있다.
오랜 가난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 개가(改嫁)를 했다가 후일 금의환향하는 옛 낭군의 모습을 보고는 이미 엎질러진 물임을 통탄하는 주나라 강태공의 아내는 차라리 딱하다. 그런데 이름난 악처의 남편들은 어찌 모두가 그렇게 걸출한 위인들인지….
모름지기 엄처시하(嚴妻侍下)란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조선시대의 사례이다. 어느 감영의 판관이 소문난 공처가였다. 어느날 아침부터 부인에게 심한 잔소리를 듣고 관청에 나왔는데 수하의 사령들은 사정이 어떤지 궁금했다.
그래서 사령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너희들 중 마누라가 무서운 사람은 왼쪽으로 물러서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자리에 남아 있으라"고 지시를 했다. 그런데 모두들 왼쪽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는데, 단 한 사람만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었다.
판관이 하도 대견스러워서 "너는 어찌하여 마누라에게 큰소리를 치고 사느냐"고 묻자, 그 사령의 대답은 이랬다. "제 처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요."
무릇 남자들이란 나이가 들어갈수록 청년시절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공처가(좋은 말로 애처가) 신세로 전락하고, 여자들이란 처녀시절의 청순가련한 자태는 어디로 가고 잔소리 많고 억센 엄처(嚴妻)로 바뀌기 마련이다.
처음 시집을 왔을 때 새색시 차림의 아내는 사뭇 애처롭기 그지없다. 오로지 신랑 하나를 의지하며 낯선 집안에서 낯선 사람들과 일희일비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그렇다. 시집을 큰 나무로 비유한다면 신랑이라는 한 가지 끝에 매달린 고적한 신세라고나 할까.
그런데 아이를 하나 둘 낳으면서 위상이 달라진다. 가지를 점령하고 줄기로 이동했다가 종내에는 뿌리가 되어 온 집안을 장악하고 뒤흔드는 것이다. 우리의 할머니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으며 아내 또한 그럴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천하를 제패하는 것은 남자였지만, 그 남자를 휘어잡는 것은 여자였던 것을 어찌하랴. 그러니 집안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남성들이 바깥 술자리에 나와서 마누라를 조롱하는 Y담이나마 나누며 잃어버린 권위와 청춘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없는 애인까지 등장시켜 마누라를 비하하며 킬킬대고 자위하는 것이다.
그 극적인 비유 중의 하나가 '마누라와 애인의 차이'란 Y담이다. '애인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고, 마누라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다'는 것에서 '애인이 머리를 만지면 거시기가 서고, 마누라가 거시기를 만지면 머리가 선다'는 노골적인 얘기도 있다.
힘깨나 쓴다는 남자 서넛이 큰 돈을 걸고 남성의 세기를 겨루고 있었다. 술이 가득 담긴 주전자를 그곳에다 걸고 오래 버티는 시합이었는데 한 남자의 힘이 기울면서 주전자가 떨어지려 했다.
그때 응원 나왔던 그의 아내가 알몸을 드러내 보이며 "나를 보고 힘을 내라"며 격려를 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주전자는 금방 땅바닥에 나뒹굴었고 다른 사람의 남성만 더 꼿꼿하게 일으켜 세우고 말았다. 다소 불경스러운 얘기를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어떤 노익장이 젊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다가 그만 복상사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더 기막힌 상황은 끝내 수그러들지 않는 '거총자세' 때문에 관 뚜껑을 닫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때 맏상주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버지의 유해 앞으로 다가가 "아버지! 어머니 왔습니다"라고 외치자, 거짓말처럼 원래 위치로 내려가더라는 것이다.
엄처시하에 얼마나 핍박과 구박을 당하고 살았으면…!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게 다 행복한 푸념에 불과하다. 다들 그렇게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운정 고운정 함께 나누며 이만큼이라도 살아온 것은 다 내자지덕(內子之德)인 것이다.
小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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