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 중인 대학의 한국어학당에서 마련한 한국어교사 양성과정에서 '한국의 현대문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수강생의 상당수가 다문화시대를 이끌어갈 중요한 일꾼들이 될 사람들이어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물론 다문화시대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신경이 쓰이는 문제는 수강생들이 치러야 한다는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이었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한국어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어세계화재단에서 시행하는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문제 출제 경향이라도 파악하고, 관련된 내용을 강의에 반영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출문제를 챙겨 보았다. 문제들이 자잘하고 시시콜콜해서 대비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한 문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다. '다음은 특정 지역과 그 지역에 형성된 외국인의 공간이다. 그 연결이 옳은 것은?' 선택지로는 다음 네 가지가 제시되었다. '경기도 남양주-몽골마을, 서울 삼청동-이슬람 사원, 서울 미아리-필리핀 시장, 인천 남동구-국경 없는 마을'.
물론 이러한 다문화 공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중요성에 공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 서울과 그 주변에 위치하는 곳들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문제의 핵심은 서울이냐 대구냐 하는 차원이 아니라, 서울의 무슨 동이냐는 수준까지 내려와 있었다.
알아서 나쁠 건 없지만,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에서 물어봐야 할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한국어라는 소수 언어를 가르치는 문화적 맥락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중앙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강요해야 하는 것이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튼 강의 끄트머리에 기출문제들을 언급했고, 이 문항에 대한 생각 또한 이야기했다.
수요일 국회에서는 그야말로 커다란 난리가 있었다. 미디어관련 법안들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잘한 시험문제 하나로 핏대를 올리던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문화를 생태에 비유해 말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당연하다. 생태계의 건강함이 종의 다양성으로 가늠될 수 있듯이 문화적 다양성은 문화적 건강함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지역은 중앙과는 다른 삶과 경험으로 나름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지역의 문화가 다양할수록 우리의 문화적 자산은 풍부해진다. 지역문화를 건강하게 하는 일은 곧 전체 문화 생태를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적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중앙은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강해서, 문화적 자원을 나누어 주기보다는 빼앗고 빨아들이는 데에만 열심이다. 7월 24일자 일부 중앙 일간지들을 보니, 종합편성채널과 뉴스채널이 생길 것이며, 이는 공중파 채널에 버금가는 힘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분위기는 그래서 '두렵다'가 아니라, '기대된다'는 쪽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종합편성채널과 뉴스채널의 등장은 곧 지역의 방송 산업 및 지역 광고 산업의 궤멸을 의미한다. 물론 지역의 방송 산업과 광고 산업이 무너져 내렸을 때, 지역 문화가 어떤 지경에 이를지는 초등학생이라도 상상 가능한 결말이다.
다문화라는 화두 안에는 나와 너, 우리와 남의 경계를 허물고, 중심과 주변, 중앙과 지역의 차별을 철폐하자는 상생과 배려의 의지가 담겨 있다. 다른 나라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생각하는 다문화도 중요하지만, 우리 안의 문화들 또한 다양하고 조화롭지 않으면 안 된다.
미디어 관련 법안들이 표결 처리되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남아 있기에, 그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법안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문화적 상황이 심히 우려스럽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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