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꾼들 정말 너무합니다. 사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찌할 수 없어 한목숨 먼저 갑니다."
이달 10일 오전 9시 30분쯤 대구 북구 복현동 한 안경공장에서 이 공장 사장 K(50)씨가 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K씨가 남긴 건 지인과 가족, 경찰에 남긴 유서 5장뿐이었다.
유서에는 사채업자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 심정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사채에 손댔다가 외주업체에 배신당하고 친인척에게 피해를 주고 가족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주게 됐습니다. 이제껏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죽도록 일을 하고도 사채 이자를 주다가 지갑에 1만원도 갖고 다니지 못한 아내,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의 2학기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이지만 식구들을 위협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습니다."
K씨가 사채의 늪에 빠져든 건 지난해 10월. 물품 대금을 주기로 한 업체는 부도를 내고 달아났고 다른 업체에 줄 돈이 밀려 있던 K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채업자를 찾았다. 사채업자 5명에게 빌린 돈은 모두 4천850만원. 연 이자율이 212~365%에 이르는 고리사채였다. K씨는 33㎡(10평) 남짓한 안경공장에서 부인과 쉴 새 없이 일했지만 1만원도 마음 편히 쓸 수 없었다. 버는 돈은 모두 사채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갔다. 원금보다 더 많은 이자를 갚았지만 빚은 날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K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들의 협박은 날로 극렬해졌다. 툭 하면 공장에 찾아와 물건을 부수고 욕설을 퍼부었다. "돈을 갚지 않으면 자식에게 빚을 대물림시키고 학교도 못 다니게 하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K씨가 목숨을 끊기 전날에도 사채업자들은 어김없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결국 K씨는 '미안하다. 사는 것이 지옥이다. 어떤 경우라도 살아야 하나 항상 하늘의 뜻은 그게 아닌 것 같다'며 아들의 등록금과 자신의 장례비를 걱정하며 세상을 등졌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25일 연 수백%에 이르는 이자를 물리고 돈을 갚지 않는다며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사채업자 K(33)씨 등 2명을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월 9일 오후 4시쯤 대구 북구 침산동 모 안경 공장에서 사장 K(50)씨에게 4천850만원을 연리 365%에 빌려준 뒤 수십 차례에 걸쳐 K씨를 찾아가 협박하고 기물을 부순 혐의를 받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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