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야구냐, 공부냐 그것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초등학교 6학년이란 어린 나이에…. 정의동(61)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인생의 첫 고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초등학교 야구선수로 활약하면서 장차 유명 야구선수와 감독을 꿈꿨으나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담임 선생으로부터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던 것이다. 운동과 공부를 함께한다는 게 지극히 어렵다는 설득이었다. 우등생이기도 해 부모의 기대 역시 컸었다.
결국 야구 배트를 던져버리고 입시 공부에 주력, 경북중학교에 진학은 했으나 운동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게 어려웠다. 중학교 때는 배드민턴부에 들어가 전국 체전에도 출전했다. 그러다가 고교 입시를 앞두고는 또다시 선수 생활을 중단한 뒤 입시를 준비, 경북고에 진학했고 고교 때는 투창선수로 뛰었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공부 역시 타고난 사람. 경북고 졸업 후에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렇지만 그는 "운동을 계속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성공한 사람이 됐을 것"이라며 특히 야구를 포기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승부란 뭘까? 운동선수였던 그가 내릴 정의가 궁금해졌다. "승부란 단판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길게 가져가는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매일 매일의 승패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승부를 겨루는 일은 언제든 다시 생기기 때문에 졌을 경우에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란다. "과장 자리에 먼저 올랐던 사람이 부장이나 국장 승진 때는 뒤로 처지는 경우가 숱하다"며 "인생에서도 승부를 길게 가져가는 사람이 이긴다. 스스로의 몸가짐을 추스르고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느닷없이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더니 자신은 '친구들'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미칠 것이기 때문이란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했던 고교 시절 친구 몇몇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역사적인 위인들보다는 이들 친구가 저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인생 목표를 세우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어떤 친구들인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대구 등지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요즘도 모임을 갖고 있단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은 골든브릿지금융그룹의 계열사로 1954년 설립됐으며, 대구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정 회장은 원래 재정경제원 등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경제관료 출신이다. 재무부'관세청'재정경제원 등에서 국'과장 등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3년간은 코스닥위원회의 제2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위원장 시절 불공정 주식 거래 감시 시스템과 공정 공시 제도를 정착시킴으로써 미국의 나스닥 다음가는 시장으로 활성화시킨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코스닥 위원장에 이어 골든브릿지 금융그룹의 계열사인 (주)골든브릿지 회장과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을 거쳐 2007년 5월부터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회장을 맡아왔다.
그는 28년간의 공직 경험이 CEO 역할을 수행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단다. "공직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여러 집단의 첨예한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일을 맡기에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CEO에 비해 상황을 더욱 거시적으로 볼 수 있고 이해 조정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소신이다. 대구경북에 대해 묻자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거론한 뒤 "대구경북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밖에서의 인재 수혈이 필요하다"며 "순혈주의만 고집하면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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