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협상의 기술

대구가톨릭대 어학원장 금동지

친구의 두 딸이 하는 짓이 영 딴판이다. 큰애는 듬직하고 참을성이 많으며 무엇보다 부모 형편을 잘 이해한다. 그래서 첫째가 사달라고 하는 것은 다 사주려고 노력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현실은 늘 그렇지가 못하다. 첫째는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른 것을 많이 참고 참아서인지 요구가 당당하다. 그런데 친구의 심기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때에 불쑥 혹은 단호하게 새 가방을 사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에 대한 친구의 대답은 아직도 못쓸 정도는 아니고, 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으니 지금은 어렵다고 자신도 모르게 단호하게 말하게 된단다.

오히려 둘째는 평소에도 제 것을 잘 챙겨가는 터라 지갑을 꽉 닫아야지 결심해도 번번이 당하고 만다고 한다. 그래서 들어본 그 둘째의 수법이 만만치가 않다. 가방이 필요하다 싶으면 몇 주 전부터 정보를 흘리기 시작한단다. 학원에 들고 온 자기 친구의 가방이 너무 부럽고 멋지더라고 시작해서, 며칠 지나면 현재 자신이 들고 다니는 가방은 낡고 무겁고 불편해서 새 가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학교 생활을 조잘조잘 보고하는 사이사이에 끼운단다. 또 다음 주가 되면 다른 친구들도 그 가방을 사려 해서 따라가 봤더니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다고 강조한다. 또 며칠이 지나면 자신도 그 가방을 들고 다니면 쓸모도 있고, 덜 피곤해서 공부가 더 잘되겠다고 못을 박는단다. 이쯤 되면 구두쇠 친구도 자신의 낡은 구두를 한 해 더 신더라고 둘째가 원하는 가방을 사줘야 되겠다고 마음이 이미 움직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첫째 딸처럼도 살고, 둘째처럼도 산다. 더 나아가 가방을 살 돈을 들고 있는 엄마로도 산다. 어떨 때 원하는 것을 얻고, 어떨 때 원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 해도 얻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배려하며, 또 참고 사는 사람들이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계약이나 협상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무조건 당당하게 주장만 한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또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결국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게 된다. 내 말을 들어줄 상대방의 기분은 어떤지, 사줄 여유가 있기는 한지 분위기 파악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 나도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최근 좋은 계약을 놓치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는데 친구의 어린 딸이 명쾌하게 한 수 가르쳐준 셈이다.

대구가톨릭대 외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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