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방식(麗江模式)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중국에서는 리장고성(麗江古城)식 문화유산 보존 및 관광산업 발전방식을 가리키는 '리장모스'(麗江模式)라는 용어가 최근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문화유적을 보호, 보존하는 한편, 옛 원형 그대로 복원시켜서 관광산업발전을 함께 추진하는 '리장모스'가 중국의 새로운 문화유산정책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다른 고성이 개발방식으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리장고성은 1986년 중국 국무원이 선정한 제2차 역사문화도시(歷史文化名城)로 지정됐지만 연간관광객이 1996년 연간 3천~5천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고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6년 2월 리장고성은 진도 7의 강진이 발생, 고성과 주변지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 데 이어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 리장고성을 찾은 방문객 수는 500만명이 넘었다.
유네스코는 2006년 리장고성의 문화유산 관리방식과 관광산업 발전사례를 '리장방식'이라고 규정하고 세계문화유산 관리와 관광산업 발전의 모범사례로 제시했다. 유네스코는 리장고성식 관리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지역 세계문화유산 관리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리장고성의 최대의 문제는 지나친 상업화다. 성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경제생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건물들을 대부분 상가로 만들어 고성 전체를 상가로 변모시켰다. 어둠이 내리면 고성은 '홍등가'로 변한다. 고성다운 고즈넉함은 사라지고 유흥가 같은 북적거림만이 고성을 지배하고 있다.
▷리장고성은
윈난성(雲南省) 리장고성은 송나라 말기와 원나라 초기에 걸쳐 나시족(納西族)이 건설한 도시로 지금까지 중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고성 중의 하나로 꼽힌다. 따지고 보면 8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사실 리장고성은 예로부터 윈난성 남부의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 푸얼(普耳)을 지나 바오산(保山)과 따리(大理)를 거쳐 리장(麗江)과 상거리라(香格里拉), 라싸(拉薩)에 이르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심도시였다. 1천여년 전부터 리장은 차(茶) 교역의 중심지였다.
중국이나 아시아의 다른 고성이 옛 고성의 자취만 남은 유적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면 리장고성은 1천년이상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나시족들이 현재까지도 거주하고 있는 '살아있는' 관광지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선가 해마다 수천명의 외국인과 외지인들이 리장고성의 아름다움에 취해 몇 달이고 눌러앉아 사는 경우가 흔하다.
고성의 면적은 3만8천㎡에 이르며 약 3만여명의 나시족들이 직접 살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리장고성을 '훠지엔증'(活見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시족은 중국의 55개에 이르는 소수민족의 하나로 아직도 모계사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리장고성에서는 이 같은 나시족의 다채로운 문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리장고성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996년 지진피해 복구를 위해 리장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옛 원형 그대로를 지키고 있던 리장고성의 나시족 문화를 접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이뤄진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리장고성의 명성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연간 3조~4조위안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리장고성은 중국 내 최고의 관광지로 발전했다.
▷리장방식은 여전히 유효한가
리장이 지금과 같은 정제된 모습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리장고성 관리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였다. 고성관리위원회는 문화유적 보존과 관광산업 발전을 동시에 모색하겠다며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고성 전체를 거미줄처럼 이어주는 수로를 정비하고 보존가치가 높은 민가 140여개를 선정, 복원 및 증개축 자금으로 4억여위안을 지원했다. 고성 내의 중심광장인 '스팡제'(四方街)를 중심으로 주요 골목길을 정비하고 돌다리는 물론 130여곳에 이르는 나무다리를 모두 개보수했다. 또한 고성의 풍격에 어울리지 않는 최근 지어진 건축물을 철거시켰다. 이 같은 작업을 마무리하자 고성은 800여년 전의 옛모습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문화유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관광산업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문화유적 보존과 관광업 발전이 일견 모순된 것 같지만 리장에서는 동시에 추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성관리위가 리장 거주 주민뿐 아니라 외지인에게도 상점 개설 허가권을 남발하는 바람에 리장은 거대한 상가와 유흥가로 변했다. 중심가의 나시족 거주지역을 상점으로 내주면서 시가지 대부분이 상가로 변한 것이다. 상가 수만 무려 1천여개에 이른다. 또한 낮에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던 고성이 저녁이면 다시 '홍등'(紅燈)이 반짝거리는 홍등가로 변한다. 고성 내의 수백년 된 유명가옥들은 객잔(客棧·여관)으로 바뀌어 세계 도처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리장고성은 겉모습은 고성이지만 거의 대부분 고가들은 현대식 상가와 객잔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성의 아름다움을 고즈넉이 바라볼 수 있는 '옛 성'의 평온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리장이 더 이상 나시족만의 문화공간이 아니라 전 인류의 문화유산인 만큼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따르는 어쩔 수 없는 부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리장고성보다 더 북적거리는 명승고적도 많은데다 고성 특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리장고성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내 고성은 없다. 그래서 다른 고성들도 고성 복원과 관광객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잇따라 리장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리장고성의 양이번(楊一奔)교수는 "저장의 아름다움과 상업화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며 "리장고성은 수천년 된 인류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경제발전의 기회까지 제공해 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윈난성 리장에서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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