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재정 조기집행 아무 문제 없나

국내에서 팔리거나 외국에서 팔리거나 만든 물건이 제대로 팔려야 일자리가 보장되고 소득이 창출되면서 경제가 돌아간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생산물이 제대로 팔리지 않고 있다면 즉, 내수와 수출이 모두 주저앉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곧 저성장과 고용불안을 의미한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우리 경제는 이러한 흐름을 겪어왔다. 아직 회복의 조짐은 미약하기만 하고 침체의 장기화 가능성마저 있어 보인다. 고용 부진과 실질소득의 감소 및 가계부채의 확대로 소비 회복은 상당기간 어려울 전망이고 따라서 투자도 당분간 부진 흐름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불확실성 높은 경제상황은 침체의 장기화 가능성이 상당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러한 때 결국 누군가 수요의 한 축을 담당해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정부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2000년 이후 통합재정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해왔고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와 누적부채 규모를 보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훨씬 양호한 상태다. 경제 살리기에 나설 수 있는 충분한 체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과감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에도 불구하고 돈은 여전히 고여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재정수단의 힘이 더욱 중요하게 인식된다. 특히 일자리 창출, 민생안정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영역에 있어서의 재정수단의 역할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크다.

그러나 경기회복에 사용할 수 있는 이러한 정부의 체력은 너무 서둘러 사용하다 보면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위험이 있어 관리와 점검을 잘 해 가면서 사용해야 한다. 또한 급소진될 수 있는 성질의 체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정부재정정책 집행에 아무런 문제는 없는 것일까? 정부의 '온기 불어넣기' 전략은 과감한 적자예산을 편성한 후 1분기와 2분기에 집중해서 예산을 앞당겨 집행하고 추경을 편성해 가급적 지출활동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내수부족을 보완하는 데 있어 그 효과가 신속하고 강력하며 중앙은행이 돈을 공급해도 금융권에서 잠겨버리는 신용경색 상황에서도 끄떡없이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대응 의지를 널리 전파시켜 민간의 소비 및 투자심리 회복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의 독려에 따라 올해 초부터 광역단체 및 기초단체별로 조기집행 실적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지역별 특성이나 산업별 특성에 따른 자재 및 인력공급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결여된 채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도 나타나게 되었다. 공사현장에서 인건비나 자재비가 급등한다거나 현장 전문인력의 부족 및 일부 자재난이 벌어지는 등의 현상이 그것이다. 또한 단기간에 이루어진 과다한 공사발주는 지도감독의 미진함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결국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의 신용경색 흐름의 주된 원인이 기업 구조조정이 미진했었기 때문이라고 볼 때 경기 활성화를 위한 올해 공사계획 금액 중 79.3%, 중소기업제품 구매계획 금액 중 88%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업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마무리하려는 정책방향과 마찰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긴급입찰제도와 선금지급 확대, 지방비 확보 전 국비교부, 공사 사전절차 간소화 등의 제도를 도입한 것은 예산집행이 신속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데 기여하였지만 자칫 예산운용이 그만큼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위험 또한 수반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예산 집행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 못지않게 예산운용의 합목적성과 적합성 및 책임성에 대한 철저한 점검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재정 운용은 명확한 중장기 운용계획과 운용원칙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의 경우 한시적인 지방채 발행 한도액 확대조치에도 불구하고 미래 채무상환능력에 부합하는 재정운용원칙을 고수하여야 한다.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확대가 경기회복 이후에도 구조화되면 자칫 재정불균형 기조가 장기화될 수 있고 그럴 경우 재정조절이 더 이상 정책수단이 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완 (영남대 교수 경제금융학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