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공교육 살리기 프로젝트

학생들은 괴롭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쉴 틈 없이 '열공'하는데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부모나 학교가 아니다. 바로 政府(정부)다. 사교육을 잡겠다고 하루가 멀다고 대책을 내놓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정리도 제대로 안 된 정책들이다. 여기저기서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지고, 해명이 꼬리를 문다. 누가 사고를 치면 뒷수습에 허둥지둥하는 꼴이다.

정부 교육 정책의 최우선은 사교육 줄이기에 있다. 그 첫 안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나왔다. 지난 4월 곽승준 위원장이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 안은 곧바로 직격탄을 맞았다. 교육부가 반발하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논란을 빚어 대통령까지 나서 교통정리를 했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이 안은 당정 협의 형식의 학원신고포상금제(학파라치) 도입으로 마무리됐다. 엇박자는 이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성적 내신 미반영, 교과 과목 통폐합 등이 흘러나왔다. 여론이 술렁거리자 정부는 추진안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학생들은 불안하다. 실제로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지난 1학기 시험 때 내신 반영이 안 된다며 대충 치러도 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여기에 대통령이 가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라디오 연설에서 '임기 말쯤이면 상당한 대학 거의 100%가 입시 사정을 입학사정관제로 하지 않겠느냐 기대한다'고 했다. 이에 교육부가 '도저히 수행 불가능한 임무'라며 반발하고 여론도 좋지 않았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입학사정관제의 중요성을 대통령이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청와대에서는 '해볼 생각도 않고 반대부터 먼저 한다'며 쏘아붙였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학생들의 미래가 걸린 중대 사안에 대해 최소한의 사전 논의도 없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입학사정관제는 거스를 수 없는 大勢(대세)가 됐다. 대학은 물론 일부 특목고까지 가세했다.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보면 대개 학생부와 개인 포트폴리오, 면접 등으로 돼 있다. 학업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다 각종 시험 성적과 봉사 활동 실적을 요구하는 것이다. 벌써 수백만 원씩 하는 입학사정관제 전문 컨설팅 회사까지 생겼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초교 때부터 맞춤식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생들은 남과 다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결정타는 법원이 내렸다. 학원 수강료를 획일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배치된다는 판결을 한 것이다. 사교육 줄이기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기도 전에 정부를 무장해제시킨 꼴이 됐다. 百年大計(백년대계)가 數日小計(수일소계)도 되지 않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정부가 굵직한 교육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그 혼란과 고통은 수험생과 학부모 몫이었다. 중'고 평준화는 학력 하향 평준화를, 학원 교습 금지는 밀실 과외, 고액 비밀 과외를 불렀다. 초교 영어 수업 도입은 초교생 대상 영어 과외 열풍을 만들고, 수능 등급제는 전 과목 과외를 불렀다. 또 논술과 면접 등으로 복잡해진 대학입시는 유치원과 초교 때부터 논술을 배우게 했다. 사교육 줄이기 대책이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겨 온 셈이다.

사교육 광풍을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 공교육 살리기뿐이다. 10년, 20년 계획을 세워 공교육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어떨까 싶다. 교원평가제로 교사 자질을 높이고, 인센티브제도 도입하자. 방과 후 학교 활성화와 학교, 혹은 학군,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인터넷 강의 개설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도 사교육 잡기에 헛심을 쓰지 말고 도서관, 기숙사 확충과 장학금 수혜자 늘리기 등 교육 인프라 구축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옳다. 수십 년간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것을 이 정부가 이길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허망하다. 차라리 10년, 20년 뒤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도 헛발질하는 교육 정책이 답답해 해 보는 이야기다.

鄭 知 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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