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다듬는 그의 손놀림은 가볍고 부드럽다.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처럼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머리카락이 살아 숨쉬듯 빗과 가위로 손질하는 그의 손길에서 명장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온다. 48년 동안 미용 외길을 걸어온 임호순(67) 미용명장. 한국 미용명장 5명 중 한 사람이다. 평생 예술을 벗 삼아 살아온 까닭일까. 60대 후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 보였다.
최근에는 C.A.C.F(한불미용예술인협회)회장과 중앙미용직업전문학교 이사장을 맡는 겹경사도 맞았다.
20세 꽃다운 나이에 하얀 가운을 입은 미용사가 멋있어 보여 미용실을 드나든 것이 평생의 업이 되었다. "파마는 1960년대 러시아에서 처음 들어왔어요. 그때는 전열기구로 파마하던 시절이었어요." 그의 얼굴에는 당시를 회상하는 진한 추억이 묻어났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미용학원을 다니면서 소질이 있어 우등상도 받았다. 꿈도 컸다. 꽤 규모가 큰 미용실에서 일했다. 미용일이 너무 재미있어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 부모의 반대도 컸다. 당시만 해도 남의 머리를 손질하는 일을 천한 직업으로 여겼다. 10년 동안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침내 5년 뒤 독립해 미용실을 차렸다. 그러나 작은 미용실을 차린 지 1년도 안 돼 그는 큰 미용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됐다. 그의 미용 솜씨에 반한 손님만도 하루 70~80명에 이르렀다고. 최신 유행하는 머리를 해달라는 단골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당시만 해도 미용 전문잡지도 없던 시절이어서 머리 유행을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최신 유행을 알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영화관을 찾았다.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리즈 테일러 등 외국 여배우들의 머리를 보며 당시의 트렌드를 연구했다. 한 달에 한번 휴가 때도 서울 명동이나 부산 광복동을 찾아 미용 경향을 벤치마킹하는 열정을 쏟았다. 1980년대엔 대구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미용실을 차려 헤어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창조하는 선도자였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헤어스타일의 유행선도는 한발 앞서 나간다.
임 명장은 C.A.C.F 2009 S/S를 통해 올가을 헤어스타일 트렌드를 제시했다. 복고와 기하학적인 곡선을 모티브로 한 변형커트, 복고 느낌에 현대적 감각이 살아있는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보브 스타일, 단발형태로 부드러운 볼륨감과 턱선과 얼굴선을 강조한 스타일, 청초한 여성미와 싱그러움으로 단아한 매력을 표현한 업 스타일(올림머리) 등.
그는 타고난 소질과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미용명장(2006)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는 도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한국고전머리협회 대구지역 연구소장이기도 한 그는 이방자 여사 궁중의상발표회 때 고전머리를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구가톨릭대 석사과정에서 고전머리를 강의하는 등 후학 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고전 머리모양은 신분과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옛날 벽화나 그림을 보고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현대감각에 맞게 머리 모양을 퓨전화했지만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TV에서 사극 드라마 붐이 일면서 등장 여주인공들의 올림머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며 고전머리의 계승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미용의 완성판이라고 할 머리카락 조형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머리카락 조형작품은 커트'컬러링'드라이 등 미용의 총체적인 기술을 접목해야 될 만큼 까다롭다. 머리카락으로 숭례문'사군자'꽃'독수리'나비 등 50여 작품을 만들어 작년에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미용명장인 그도 "손님 취향에 맞춰 혼을 심어 머리를 손질한다"며 "헤어와 의상을 동시에 아우르는 토탈 패션을 추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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