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동령(殷冬靈:잉동링)'.
중국 중산층 이상(아버지는 원양어선 사장, 어머니는 회계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외동딸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보수도시 대구에서 4년째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대구 의료관광홍보대사가 됐을 뿐더러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엠블럼 선포식 패션쇼에도 당당하게 모델로 등장했다. 패션쇼 뒤 전·현직 대구시장과 박종근 국회의원, 문동후 육상조직위 사무총장과 같은 헤드테이블에 앉아서 톡톡 튀는 말솜씨와 매력을 선보일 정도다.
은씨는 스스로도 "제가 절반은 한국사람입니다. 이제 꿈도 대구 사투리로 꿀 때가 많아요. 생각도 한국식으로 해서 급할 때도 한국말이 먼저 튀어나올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대구사람 자격있지요"라고 말했다.
고교시절 한국의 원조 아이돌 그룹 'HOT'의 장우혁을 좋아한 게 대구와의 인연의 시발점. 중국에서 대학에 입학한 뒤 한국 유학을 결심했고, 장우혁의 고향인 구미와 가까운 대구를 택했다. 대구 여러 대학들 중에서는 캠퍼스가 아름답고 외국인 학생들이 지내기 좋다고 하는 계명대가 눈에 쏙 들어왔고, 미련없이 지원했다. 고려대 교환학생이었던 친구 주정씨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다.
이렇게 은씨가 계명대 어학원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는 수백명의 중국 유학생들 중 1명일 뿐이었다. 이런 평범한 대학생의 삶을 180도 바꾼 건 KBS 글로벌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에 출연한 덕분이다. 그는 먼저 자리잡은 캐서린 배일리(Catherine Baillie·계명대 디지털영상학과 석사)씨와 함께 미수다의 대구 투톱 미녀가 됐다. 둘 다 재치도 있고 말도 잘한다. 캐서린씨는 지난해 대구시 홍보대사가 됐다.
이렇게 바빠진 은동령을 27일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엠블럼 선포식이 끝난 뒤 3시간 가량 만났다. 너무 털털하고 애교가 많아 누가 인터뷰이(interviewee)고 인터뷰어(interviewer)인지 헷갈렸다. 뭐가 톡톡 튀는지, 왜 반쯤 연예인이 됐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 대구에 푹 빠져 사는 은동령
"노들강변 한번 들어볼래요.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제법 가락을 알고 불렀다. 요가와 함께 춤을 배우는 무용아카데미에서 벌써 3개월째 한국전통무용을 배우고 있단다. 다음달에는 부채춤도 배운다고 자랑이다.
은씨는 "한국 전통춤을 배우면서 여자로서 참고 인내하며 이를 춤으로 승화시키는 걸 알아가고 있다"며 "춤 동작을 통해 한국여성들이 은근하게 남성을 유혹하고, 튕기고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한(恨)의 문화까지는 이해하지 못해도 빠른 속도의 한국의 전통춤에 대한 학습능력을 갖춰가고 있었다.
한국에 이렇게 푹 빠져 사는 은씨. 그의 첫사랑도 중국이 아닌 한국 그것도 대구에서다. 계명대 3학년 편입시절 첫사랑은 한국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줬으며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후 두 번째 사랑도 대구에서다. 2년 넘게 만났지만 지난해 겨울 모든 게 정리됐고 이젠 솔로다.
은씨는 "요즘은 활동도 많이 하고, 혼자 바쁘게 살기 때문에 그렇게 외로운 줄 모르지만 정말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 것을 기대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해심 넓고 잘 생긴 남자 어디 없나요?"라고 그는 스스럼없이 묻기도 했다.
그의 앞으로의 계획도 대구가 주무대다. 오는 2학기가 논문 학기이기 때문에 1년 정도 휴학을 하면서 논문준비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논문주제도 정해졌다. '중국 유학생의 여가생활 장애요인'. 5만여명에 이르는 한국 유학생들이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있으며, 어떤 장애요인 때문에 여가생활이 원활히 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다. 이 논문은 설문조사 샘플도 많이 구해야 하지만, 한국 및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다.
은씨는 2년 뒤 석사학위를 마치고 난 뒤 한국에 계속 머물지 일본으로 유학갈 지도 고민 중이다. 결혼은 4년 뒤 서른살쯤 되었을 때 할 계획(?)이다. 물론 결혼상대는 누가 될 지 모르는 일. 타지역보다 대구남자면 더 좋다.
◆팔방미인 되고픈 그녀, 공부도 잘해
은씨는 경쟁에서 꼭 이기려고 한다. 본인 말대로라면 '1등은 아니지만 항상 잘하는 앞쪽에 서고 싶다'. 실제 그랬다. 그는 공부도 잘한다. 1등도 여러 번 했다. 중국 북경언어대학에서도 4학기 중 3학기는 1등, 1학기는 2등을 차지했다. 전 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은 우등생이다. 계명대에서도 학비의 50%는 장학금으로 면제받고 있다.
계명대에 편입한 후 평균학점이 4.0에 이르며, 3학년 1학기에는 전체 98명 중 9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렇게 성적이 뛰어난 은씨라도 논문만은 만만치 않은 벽이다.
"너무 어려워 골치 아파 죽겠어요. 논문쓰는 거 장난 아니에요. 수업듣고 시험치는 거 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그래서 1년 동안 휴학하고 더 시간을 갖고 연구하려고요."
골치 아픈 것도 그녀가 말할 때면 귀엽다.
방송 및 기타 홍보활동은 대구에 청량제가 되고픈 열망의 반영이다. 지난해 1학기를 마치고 일본 유학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KBS 미수다 출연이 진로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첫 방송부터 대구아가씨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로 자리를 잡은 것. 유명세를 즐긴 것도 사실이다. 캠퍼스로 돌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박수도 보내주고 격려도 많이 해줬다. 이젠 대구에서 제법 유명해졌다.
은씨는 방송출연 이후 유명인사가 돼 살았던 1년여의 생활에 대해 "처음 TV에 나왔을 때 내 모습을 보고 목소리도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고 얼굴도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아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데도 주위 사람들은 '귀엽고 예쁘다'고 칭찬해줘 어리둥절했다"고 털어놨다.
"어쨌든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해준 건 감사한 일이죠.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은동령은 모국어인 중국어 뿐 아니라 4년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배운 한국어, 중국 북경언어대학시절 전공인 일본어 등 한·중·일 3개 국어에 능통하다. 한국어는 회화에 강하고, 일본어는 문법에 강하단다. 한국어는 문법에 약하고 일본어는 회화에 약한 셈이다.
◆맹활약하다보니 에피소드도 많아
최근 미수다 MC이자 지역 대경대 교수인 남희석씨를 상대로 사고(?)를 쳤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 MC에 대해 남편감으로 괜찮다고 추켜세운 뒤, "방송이나 연예계에서 일하다보면 예쁜 여자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 아내가 늘 마음이 안 놓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인터넷 제목이 "남희석은 남편감으로 불안하다"고 해버린 것. 앞뒤 다 잘라버리니 남 MC가 곤혹스러워 할만도 했다.
그는 "제가 말한게 그게 아닌데요. 정말 억울해요. 제목만 따서 그렇게 기사가 나가니 사람들은 완전 오해하죠. 남 MC는 정말 재치도 있고 성실해 남편감으로 물론 존경하는 분"이라고 해명했다.
크리스마스 특집 때는 펑펑 울어버렸다. 함께 출연한 친구가 '짱게(자장면)' 얘기를 했는데 주변에서 중국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생각해 기분이 상했고 슬픔이 복받쳤던 것.
은씨는 세상을 이해하는 폭도 넓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방 역시 남자들끼리 사랑을 나누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조인성이 동성애로 나오는 영화 '쌍화점'도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개방적인 성격이라 저 역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은씨는 기분파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는 방송 출연료를 털어서 음식값을 낸다.
"물론 '품빠이'(각자 내는 것)를 가장 좋아하지만, 그래도 제가 돈을 버니까 한 번씩 쏘아야지요.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도 행복해요."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은동령은? 1984년 중국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출생. 항운초교, 진강시 제12중학교, 제1고등학교 졸업. 북경언어대학 일본어학과 2년 졸업. 2006년 계명대 관광경영학과 3학년에 편입해 2008년 졸업. 현 계명대 관광경영학 석사과정(3학기 마치고 휴학 중). KBS 미녀들의 수다 40여회 출연. 계명대 외국인학생 홍보대사, 대구시 의료관광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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