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월 미국 유학 떠나는 우동기 전 영남대총장

이 나이에 유학? 도전은 언제나 날 가슴뛰게 하니까…

우동기 전 총장이 미국으로 가기 전 그의 사무실에서 총장 4년을 회고하고 있다. 사무실은 그의 서재 겸 연구실이다.
우동기 전 총장이 미국으로 가기 전 그의 사무실에서 총장 4년을 회고하고 있다. 사무실은 그의 서재 겸 연구실이다.

"저 잠시 떠납니다."

우동기 전 영남대 총장은 지난달 23일 기자와의 마지막(?) 오찬으로 우동 대신 짬뽕을 선택했다. 그것도 '매생이 해물짬뽕'. '우동'은 고등학교 때 별명이었고 당시 좋아했지만 지금은 즐겨먹는 메뉴는 아닌가보다. 식사 후 대구시 중구 대봉동 그의 연구실로 동행했다.

우 전 총장이 기자와 만난 날은 미국 스탠퍼드대로 떠나기 정확히 20일 전. 이제는 10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11일 출국해 온 가족과 함께 미국생활에 들어간다. 미국 국무성 풀브라이트 스칼라십으로 가는 5개월짜리 유학 프로그램. 그는 이 기간 동안 미 샌프란시스코주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초빙교수로 '대도시 위기관리'에 대한 연구에 몰두할 계획이다.

유학기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는 귀국하면 대도시 위기관리론에 관한 저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9·11 테러 이후 대도시 위기관리에 대한 업그레이드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국내 대도시의 위기에 대처하는 이론적 체계를 그의 저서에 담아낼 계획이다.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생활이 조금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5개월 이후엔 체류비용이 자부담이기 때문에 고민이다. 그래도 필요하면 체류기간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 전 총장은 지금 유학준비에 한창이다. 때마침 군대를 제대하고 나온 둘째 아들 덕분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둘째는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컴퓨터를 다루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해 아버지의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분한 파일을 만들고 있다. 더불어 사무실 관리자이자 아버지의 비서으로서 역할도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없었다"고 했다.

지역 최고 사립대의 총장에서 평교수로 돌아간 지 6개월. 또다시 미국으로 최소 5개월 이상 떠나는 우 전 총장의 도전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국회의원으로 변신할지, 광역단체장이나 교육행정가에 도전할지, 학자로서 유명한 저술가가 될지, PGA Members(평일 골프 애니타임회의 준말로, 일선에서 은퇴한 반백수들의 모임) 회장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변신은 어떤 것이든 무죄다. 그에겐 도전과 응전의 열정이 그득하다.

◆영남대 총장 4년은 '보람된 세월'

그는 떠난 지 6개월이 지난 총장시절 어떤 업적을 이뤘는지 묻자 "아이고, 그걸 내 입으로 어예 얘기하느냐"라고 계면쩍어 했다. 대신 재임시절 있었던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언론에 비친 영남대학교'(2005.3~2009.1)란 책 한권을 건넸다.

책을 건네받은 뒤, "그래도 재직시절 보람된 일을 말해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영남대의 기본적인 잠재력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어느 정도 만들었던 것 같다"며 "영남대 학생들의 졸업 후 성취도는 대한민국 어느 대학보다 뛰어난 것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18대 국회에서 영남대 출신(대학원 포함)이 18명인 것도 은근히 내세웠다.

그의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더라도 ▷로스쿨 도입 ▷천마인재학부 설립 ▷60주년 기념 천마아트센터 건립▷교수승진·승급 시스템 개편 ▷전자입찰제 도입 ▷향토기숙사 건립 ▷실용성을 강화한 커리큘럼 ▷영남대병원 노사안정 등에 재임시절 상당한 성과와 열정을 보였다는 것이 대학안팎의 평가다.

학교발전기금 모금에서 역대 총장 재임기간 동안 모은 액수보다 더 많이 모았다. 천마아트센터 건립, 교수승진·승급시스템 개편 등은 그의 특유의 추진력으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그는 사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 총장 재임 4년 이후엔 곧바로 미국으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미 국무성의 초청기간과 준비하는 시간 등이 맞지 않아 6개월을 미뤘다.

그는 이 자투리 시간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 기간에 또다시 대학원생이 된 것이다.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원 1학년 신입생 총무이기도 하다. 새로운 학문에의 도전이 즐겁고 신난다. 그는 1999년 영세를 받았다.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단순히 부지런히 성당에 나가는 것뿐 아니라 성경과 신학에 대해 제대로 깊이 알고 싶었던 터였다. 하지만 미국 유학 때문에 1학기만 끝내고 휴학해야 한다.

"총장 퇴임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지만 이번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든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지난 총선 '일찌감치 출마 포기 결심'

"지난 18대 총선에 출마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학자로 살아가다 갑자기 정치인으로 변신할 명분을 찾지 못해 불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총장 임기가 남아있었고, 갑자기 정치인으로 변신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우 전 총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리고 출마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혹시 19대 때 출마할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그 역시 그 때 돼봐야 알겠지요. 누구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즉답을 피해갔다.

그는 학자로서뿐 아니라 다방면의 자질을 지녔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대도시 위기관리는 해당 지역에 맞는 방재시스템을 연구하는 것으로, 그 도시의 광역단체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다. 그가 교양과목으로 가르쳐온 '성공전략과 협상' 역시 이해관계 당사자끼리 어떻게 하면 서로 윈-윈하면서 양보하고 소통하느냐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는 "지방정부와 지자체 역시 이런 토대 위에서 주민들과 협상하고 갈등을 조정한다면 더 나은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변신과 응용의 귀재다. 학사·석사·박사 때마다 전공이 다 다르다. 행정학에서 과학석사, 사회공학박사로 변해갔다. 사회공학 박사는 열역학과 엔트로피 1, 2법칙 등을 도시정체 문제 등을 푸는데 응용해내는 첨단 사회과학 분야이다.

◆일문일답 이모저모

-대도시 위기관리란

"인구 200만~300만 이상의 대도시는 언제든 큰 재앙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과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비한 안전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대구지하철화재 참사, 서울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감당하기 힘든 국가재앙이 닥칠 때 이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영남대 재단정상화에 대해

"설립자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박 전 대통령이 영남대 설립자라는 얘기를 하면 누구나 알아주고 높게 평가합니다. 대학발전에 있어 박정희 브랜드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휘말리면 안 됩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를 추천한 문제는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영남대 발전이란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들에 대한 교육철학은

"전 기본적으로 간섭하지 않습니다. 뭘 하든지 본인 판단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두 아들이 자랑스럽고도 미안한 것은 본인 의사와 달리 둘 다 영남대에 입학시켰다는 것입니다. 다른 대학에도 합격했지만 제 아들조차 영남대에 믿고 보내지 않는다면, 총장으로서 다른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자신있게 영남대에 자녀들을 보내달라고 얘기하겠습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들 둘이 아버지에게 힘을 실어준 셈이죠."

-바람직한 대학교육상은

"이명박 정부에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낡은 규제들은 풀고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대학끼리 서로 경쟁하는 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균등 해소, 지역과 수도권의 교육격차 등은 중앙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합니다. 그런 토대 위에서 대학끼리의 진정한 경쟁이 가능해지고 질적 발전을 가져오리라 생각합니다."

-대구가 살 방향은.

"서울, 부산에 대도시 기능을 흡수당해서는 안 됩니다. 대구는 전국 8개 고속도로의 중심에 있는 좋은 조건입니다. 내륙도시로서 특성화된 산업만이 살길입니다. 타 지역민들이 자주 찾게끔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와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대구는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우동기는? 1952년 경북 의성 출신. 대구고, 영남대 행정학과 졸업. 1982년 태국 AIT 과학석사(인간정주학). 1990년 일본 쓰쿠바대 사회공학 박사. 국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역임. 영남대 교수. 영남대 총장 비서실장·홍보실장·발전협력처장 역임. 대통령 자문 지방이양위원회 위원, 대구·경북 지역혁신위원회 위원과 대구YMCA 이사 역임. 2005년 2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영남대 제12대 총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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