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예부터 칼국수가 유명했다. 여인네들이 손 반죽과 홍두깨로 펴는 작업을 수십차례 반복해 태어나는 안동국수는 정성이 깃들어 있다. 제분기술이 요즘같지 않았던 예전에는 대청마루에 병풍을 펼쳐놓고 한지를 깐 다음 절구에다 빻은 밀가루를 부채질해 날려서 쌓인 고운 밀가루로 반죽해 국수를 만들었다.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통념을 깨고 서울 등 도심에서 귀족국수, 별미, 여름철 보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안동 '누름국시'와 '건진국수'에는 수백년 이어온 안동 여인네들의 정성과 손님에 대한 섬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안동 건진국수와 누름국시
'안동 건진국수'는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군 다음 '건져내' 장국에 고명을 얹어 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하고 장수하는 음식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귀한 손님들에게 내던 별미요, 건강식이다. 다른 지방과 달리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어 낸다. 이 때문에 건강식으로 다른지역 국수에 앞서고 있다.
애호박이 주렁주렁 달릴 때가 제철이다. 이 음식은 대표적 양반음식이다. '수중군자'(水中君子)로 불리는 기품있는 생선인 은어를 달여낸 육수에 가는 국수를 말고 오색고명을 얹어 낸다. 은어는 비린내가 적고 특유의 수박향 때문에 장국물 재료로 최고였다. 예부터 기침이 심할때 은어를 먹었을 정도로 기관지에도 좋다. 은어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 6월이 돼야 잡힌다. 헛제사밥과 간고등어, 식혜와 함께 안동지역 4대 향토음식으로 꼽힌다.
건진국수가 양반네 음식이었다면 '안동 누름국수'는 서민들이 손쉽게 즐겨 먹었던 막국수로 전해온다. 끓는 멸치장국에다 뒤뜰에서 채취한 채소와 애호박 등을 썰어 함께 끓여낸 음식이다.
최근 들어 지역 식당에서는 안동 누름국시 한 그릇만 달랑 내놓지 않는다. 조밥과 각종 나물반찬이 곁들여진다. 안동국수의 상품성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그저 '안동국시'라는 간판만 내걸어도 고향과 어머니 손맛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달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안동국수의 맛이 구수한 이유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반죽하는 안동국수
안동시청 인근 '부숙(府淑) 한정식'에서 안동국수와 건진국수 맛 체험에 나섰다. 이 곳은 한정식 식당이다. '국수 맛 체험에 한정식 집이 어울리느냐?' 하는 의구심도 있을 법하지만 이 곳에서 안동국수의 고급화, 상품화를 함께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 코스요리가 즐비한 한정식 메뉴에 밥을 대신해 '안동 누름국수, 안동 건진국수'가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외지인들이 안동 여행에서 이 식당을 찾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일행을 맞는 남창숙(60) 사장은 "안동지방 국수는 그냥 한 그릇의 음식이 아니라 여인네 손길이 수백번 가야하는 정성과 섬김이 담긴 음식"이라 운을 뗀다. 어릴적 친정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보고 배운 그대로를 고집하는 남씨다.
안동국수가 다른 지방 국수와 다른 점은 밀가루와 콩가루를 3대1로 섞어 버무린다는 것. 장국물 재료로 소고기를 사용하지 않던 안동지역에서는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리는 콩을 사용해 가족과 손님들의 건강을 챙겼다. 콩가루를 섞으면 찰지고 쫄깃쫄깃하다. 손으로 반죽을 치대면서 연신 찬물을 뿌린다. 반죽이 질거나 되거나에 따라 국수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손반죽은 30여분 계속된다. 많이 치댈수록 쫄깃한 면발을 만들 수 있다.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누르면 자국이 날 정도의 반죽이 완성되면 비닐에 싸서 2, 3시간을 숙성시켜 둔다.
다음은 홍두깨 작업.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손바닥 정도의 밀가루 반죽이 수십차례에 걸쳐 밀고 펴고하는 작업 끝에 홍두깨에 둘둘 말릴 정도로 얇아진다. 어느 새 반죽이 종잇장처럼 얇아 진다. 얇게 펼수록 안동 건진국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 2, 3mm정도로 얇아지자 손바닥만 했던 반죽이 지름 1m가 족히 넘을 정도가 됐다. 몇겹으로 접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자른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두께로 잘려 나간다. 오랜 경험을 통해 손칼국수 면발을 뽑아내는 것. 손님의 취향에 따라 두껍거나 얇게 쓸어낸다.
남 사장은 "반죽을 하다가 손님이 한 명 더 오면 홍두깨질을 한 번 더 한다. 그러면 한 그릇 분량의 양이 더 나온다"며 "건진국수는 얇게 썰어내고 누름국시는 두껍게 썰어낸다. 그래야만 쫄깃한 건진국수와 구수하고 부드러운 누름국시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고 한다.
◆국수 한그릇에 담긴 여인네 손맛과 정성
국수 장국은 닭과 은어로 우려낸다. 은빛이 반짝이는 은어를 끓여낸 육수는 연노란색을 띤다. 콩가루를 섞어 노르스름한 면발과도 잘 어울린다. 굵은 소금으로 간을 맞춘 물이 한바탕 솥에서 끓어오르면서 요동칠 때 면을 집어 넣는다. 젓가락으로 휘휘 돌려 서로 엉키는 것을 막는다. 다시 끓어 오르면 찬물을 붓고 한 차례 더 끓여 건져낸 후 찬물에 헹궈낸다. 면발이 탱글탱글해진다. 건진국수가 쫄깃한 맛을 내는 비결이다. 둥글게 말아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붓는다. 흰자위와 노란자위의 계란 지단, 닭 가슴살, 오이와 호박을 채썰어 오색 고명을 만들어 얹고 깨소금을 뿌린다. 김치와 오이 소박이 등 간단한 반찬을 곁들인다. 집간장에다 마늘, 고추, 고추가루, 깨소금, 파 등으로 만든 양념장으로 간을 맞춰 먹도록 한다.
안동 누름국시는 육수를 끓여 곧바로 면을 넣고 한차례 더 끓인 후 호박 등 채소를 넣어 그릇에 담아낸다. 겨울철에는 콩나물이나 신김치 등도 함께 넣어 끓이기도 한다.
'담백하면서도 참 깔끔하고 시원하다.' 건진국수 장국 한모금을 마시면 전해오는 느낌이다. 밀가루로 만들어 텁텁할 수 있지만 그런 맛은 느낄 수 없다. 고명을 한데 버무려 한 젓가락 집어들었다. 알맞은 길이로 잘린 국수 가락이 입안으로 쏙 들어온다. 그야말로 '후~루~룩~!' 소리가 전하는 느낌 그대로의 알맞은 길이다. 닭 가슴살의 담백함과 찬물에 식혀낸 면발의 쫄깃함이 한데 어우러져 입 천장에 착 달라 붙는 느낌이다. 씹히는 맛이 여느 국수와 다르다. 뒷맛으로 은근히 은어향이 감도는 듯하다.
이어 내놓는 누름국시는 또 다른 맛이다. 부드럽다. 구수한 맛이다. 밀가루와 콩가루로 반죽한 같은 면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다른 맛이 날까?. 누름국시는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기에는 면발이 너무 부드럽다. '후룩', 짧은 소리의 느낌 그대로 입안 가득 구수함이 배인다. 고향의 어릴적 향수가 혀끝을 타고 온 몸으로 전해져 따스해진다. 300~500g 정도에 불과하지만 포만감으로 남부러울 게 없다. 하찮게 여겼던 국수에 대한 편견이 불과 두어 시간 만에 사라진다. 별미다. 정성과 손님에 대한 예, 섬김이 오롯이 담긴 귀한 우리네 음식이다.
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l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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