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강화'라는 책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가운데 '달밤'이라는 작품이 있다. 193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데, 이 소설에는 황수건이라는 '우둔하면서도 천진스런 눈'을 가진, 서울 사대문 밖에 사는 '못난이'가 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진짜 못난이라기보다는 가파른 세상 인심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약삭빠르게 처신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사내이다. 이 사내의 평생 소원은 신문 '원배달부'가 되어 보는 것이다.
남이 혼자 배달하기 어려워 한 20부 정도 떼어 주면 그걸 배달하고 3원의 급료를 받는 보조배달부보다는 신문사 제복을 입고 방울을 차고 다니며 한 달에 20여원의 급료를 받는 원배달부가 되어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면 무서운 개가 지키고 있는 집에도 겁 없이 신문을 배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사내는 원배달부도 되지 못하고 보조배달부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처세에 빠르지 못한 인간이 고초를 겪기는 1930년대나 그로부터 8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최근 소위 미디어법 문제를 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미디어 종사자들에게는 이 문제가 민감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사안이다. 차라리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노사 대치가 이해하기 훨씬 명쾌한 문제이다.
우리 국민들은 치킨게임과 같은 이런 경험을 이미 여러 차례 한 바가 있다. 대규모 집단적인 해고사태는 1997년 IMF사태 때 경험했고, 그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아래서 노동자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간헐적으로 잘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노사공방과 해고사태와 같은 문제는 이해하기도 훨씬 쉽다.
사실 미디어법 국회 통과를 강제한 여당에서는 국민들에게 채널 선택권을 넓혀주겠다는 논리이고, 야당에서는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이나 재벌에게 방송을 넘겨줌으로써 가뜩이나 한쪽으로 쏠려있는 여론의 독과점 상태를 더욱 심화시켜 장기 집권의 발판을 삼겠다는 책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이다. 두 쪽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명백히 여당의 파울 플레이다. 법률적인 문제는 각자 고소 고발 등 법에 제소를 해 놓은 상태이니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다수 의석을 가진 정부 여당이 대리투표, 부결공방 등의 문제를 낳으면서까지 사태를 폭력적으로 끌고 간 것은 아무래도 거대 여당의 정치력 부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법안이 통과된 후 시중의 여론을 봐도 국민의 70% 정도가 이 법의 폭력적인 통과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앞서 이태준의 소설을 인용한 바도 있지만, 1930년대의 언론인(당시에는 주로 신문기자였겠지만)은 志士(지사)이자 시대의 선구자였다. 정의롭고 날카로운 필봉으로 소위 '정론직필'을 외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약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다. 흔히 소설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신문기자가 아니라 신문 원배달부를 자신의 평생의 소원으로 생각하는 황수건 같은 사내도 등장하는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을 두고 제한된 국내 광고시장을 분점해야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중앙지와 지방지, 국영방송과 민영방송, 지방방송 간에 갖가지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있어 결국은 살아남기 위한 '정글의 싸움과 야수의 쟁투'를 벌여야 하는 당사자들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에 따라 국민들의 삶의 질도 많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장관이 된 어느 인사가 "장관 되니 정말 좋다, 단 국회의원만 없다면" 하니까 국회의원 된 자가 "국회의원 되니 참 좋다, 단 기자만 없다면" 했다고 한다. 현실 권력 서열의 정점에 언론인이 있다는 풍자이다.
이쯤에서 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 소위 제4권부로도 불리는 언론의 본분이 무엇인지. 어쩌면 이 시점에서 미디어법의 향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인들의 근본적인 자기 정체성 확인과 성찰인지도 모른다.
김용락(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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