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융복합 흐름과 다문화 사회

오늘날 주목할 만한 사회 흐름 중의 하나는 융복합 흐름이다. 다양한 명칭으로 표현되는 융복합의 움직임을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눈에 쉽게 띄는 것이 서로 다른 음식 간의 융합, 즉 퓨전(fusion) 음식의 등장이다. 관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퓨전 레스토랑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시장에도 서로 다른 원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의 등장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상품 시장뿐만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도 분과 학문의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통섭(consilience)의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근대 과학이 나타난 이래 학문 세계에서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는 전문화된 학문의 분화가 대세였다. 그러나 경계가 단단한 분과 학문만으로는 자연 현상이 되었든 사회 현상이 되었든 그것을 연구하는 데 한계에 부닥치면서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어 서로 융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대학원 교육에서 융복합의 성격을 띤 전공 분야가 등장하는 것은 이런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융복합의 움직임은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이자 사회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해졌다.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전은 과거에 비해 이질적인 것끼리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크게 증대시켰다. 이질적인 것들 간의 접촉과 만남은 서로 간의 갈등을 낳으면서 세상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날로 분화되는 지식의 세계는 현상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 여기에 융복합의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융복합의 시도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융복합 자체가 전에 없었던 것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종 결합에 비해 이종 결합이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클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전자업계가 세계 시장에서 보여주는 경쟁력은 누구보다도 먼저 이종 기술의 융합을 시도한 데에서 얻어진 것이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국 전자업계가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강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사업자로 성장하였다. 그것은 휴대폰 사업에서 한국 전자업계가 통화기술과 영상처리기술의 융합과 같은 여러 가지 기술 융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서로 다른 종류의 분야나 기술 간의 융복합이 낳는 성과는 차이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융복합의 시대에는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분야간 장벽을 허물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요구한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영국의 스탠더드차타드 은행은 놀랍게도 새 회장에 세계적 패션 기업인 버버리의 전 회장 존 피스를 선임했다. 그런가 하면 거대 석유회사 BP는 새 회장에 스웨덴 통신장비 업체 에릭슨 출신인 칼 헨릭 스반버그를 임명했다. 이처럼 동종 업계 출신이 아닌 이종 업계 출신의 최고경영자를 영입한다는 것은 기업 경영에서도 융합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융복합의 시대적 움직임은 다문화 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문화 사회가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가 하나의 사회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다문화적 환경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인종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동질적인 사회에서 이질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것은 새로운 갈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결혼 때문에, 혹은 취업 때문에 해외 이주자가 들어오면서 유입되는 이질적인 요소는 기존의 요소와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주민이 들여오는 이질적인 요소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존의 것과 융합시켜 내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과제이다.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융복합의 시대적 흐름과 잘 결합시킨다면 우리 사회는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백승대(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