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빙 피셔(1867~1947). '계량경제학의 창시자'로 1920년대 미국 최고의 경제학자였지만 잘못된 예측으로 명성과 재산을 모두 잃었다. 그는 1924년 10월 14일 한 투자자 모임에서 "주가는 영원히 지속될 높은 고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0일 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믿고 주식을 팔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주가는 다시 폭락했다. 이로 인해 그는 1천만 달러를 날렸고 '한 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경제학자 표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2008년 초 미국과 영국에서 '세계 경제 대예측 2010 버블 붐'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책의 내용은 "2008, 2009년에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이 올 것이며 어쩌면 2010년까지도 대호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 미국경제의 부흥을 정확히 예견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해리 S. 덴트였다. 하지만 그해 10월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이 책은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촉발시킨 세계경제 위기는 경제학자들을 또다시 궁지로 몰아넣었다. 주택 버블을 경고한 학자는 있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를 경고한 학자는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예측 능력에서 경제학자는 점성술가보다 못하다는 조롱까지 받는다. 미국의 경제학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경제학적 예측의 유일한 역할은 점성술을 더욱 대단하게 보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런던 정경대학을 방문해 "왜 아무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최근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答信(답신)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告解(고해)했다. 머리 좋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시스템에 내재한 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은 부족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합심해 전체를 보는 능력을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이 다짐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낳을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잘못을 고백한 진성성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제위기를 예측하지도,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적어도 이 같은 자세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위기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았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 하면 할 말 없지만.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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