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교육 줄이기 '학교의 반격' 놀라워라

칠곡지역 13개 학교 협력 방과후 학교 가보니

대구 북구 칠곡지역 13개 학교들이 공동으로 특기·적성교육과 교과 수업 등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대구 북구 칠곡지역 13개 학교들이 공동으로 특기·적성교육과 교과 수업 등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사교육비 경감, 공교육 정상화'는 교육계의 끊임없는 화두이다. 역대 정부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해왔지만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사교육 시장은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인해 학부모의 불안을 등에 업고 그 세력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공교육의 반격이 심상치 않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읽어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공교육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는 것.

그러한 공교육 정상화 노력 가운데 하나로 학교 간 연대가 있다. 인접한 학교끼리 공동체를 구성해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것이다. 대구 북구 칠곡지역 13개 학교는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방과후학교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서로 뭉치는 전략을 선택했다. 지난 5월부터 방과후학교 협력회의를 열어 교육협력망을 구축해 방과후학교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여름방학도 잊은 채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공교육 현장을 찾았다. 학과 공부가 부족한 학생은 공부 보충을, 특기·적성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들에겐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

◆학생 관심 맞춘 특별 프로그램

지난달 30일 오전 대구 북구 읍내동 칠곡중학교의 한 교실. 10명의 학생이 각자 클래식 기타를 1대씩 들고 대표적인 클래식 기타 명곡 '로망스'를 연습하고 있었다. 초보의 손길이라 매끄러운 연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기타 줄을 튕기는 학생들의 표정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신청했다는 이화수(14·칠곡중학교 2년)군은 "기타 연주가 어렵긴 해도 한번 연주하고 나면 성취감이 쏠쏠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음악실에서는 바이올린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3명의 여학생이 어깨에 바이올린을 올려놓고 강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활을 당겼다. 아직은 강사가 일일이 자세도 교정해주고 '팔에 힘을 빼라'며 코치를 해줘야 하지만 수업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진지했다. 강다영(13·칠곡중학교 1년)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프로그램이 마련돼 너무 좋다"고 했다.

오후에는 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생활요리반 수업이 열렸다. 50여명의 학생이 팀을 나눠 참치샌드위치와 신호등(3색) 김밥을 만드는 시간. 적지 않은 남학생도 참가해 먹을거리를 만드는 수업에 아이들은 어느새 웃고 떠들면서도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칠곡중학교 2기 방과후학교 특기적성과 위탁교육 수업이다. 영어나 국어, 수학 등 교과 수업 등을 포함한 29개 강좌 가운데 하나. 이는 칠곡 지역 2개 초등학교(교동·칠곡), 9개 중학교(강북·관음·관천·교동·구암·동평·운암·칠곡·학남), 2개 고등학교(구암·함지) 등 총 13개 학교가 참여해 진행하는 '칠곡꿈나래 방과후학교'의 현장이다.

◆학교마다 특성화 전략 추진

칠곡꿈나래 방과후학교는 칠곡 지역 13개 학교가 지난 5월 13일 제1차 협력협의회 이후 학교별로 특성화(브랜드) 프로그램을 연계해 공동으로 강좌를 운영하는 체계다. 위탁 프로그램 공동 참여와 협의회의 정례화 등을 통해 방과후학교 활성화를 위한 '윈-윈'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 일부 학교에서 마련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인근 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사례와는 달리 한 지역에서 초·중·고교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 운영하는 것은 첫 시도였다.

2009학년도 여름방학 프로그램 표를 참고하면 언어영역반, 수능영어 따라잡기반(구암중) 드럼반(관천중) 농구반(관음중) 수학선행반(학남중) 원어민영어캠프(구암고) 등 55개 특성화 프로그램이 준비돼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교동중학교에서는 마술반을 편성했지만 기본 15명 정원을 채우지 못해 취소되자 신청한 10명의 학생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간 배정은 오전과 오후 시간, 일자를 조정해 듣고 싶은 수업은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하고 있다.

이 강좌들은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 결정한다. 칠곡중학교 방과후학교 담당부장인 이상숙 교사는 "프로그램 선정 이전 학부모·학생은 물론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생활요리반이나 수영·헬스 교실은 특별히 지역 기관과 위탁운영 협약을 체결해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서 좋은 강사를 일찌감치 확보하는 노력도 기울였고,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홍보 전단을 제작해 학부모들에게 배부했다. 이 교사는 "1학기 중 1기를 진행하고 나서는 입소문이 나서 협의회에 속하지 않은 학교의 학부모들에게도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별 특성화 강좌는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다.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에 신청하면 된다. 기준만 갖춘다면 학년이나 연령의 차이도 두지 않는다. 교동중학교에 다니는 정초롱(13)양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서 칠곡중학교의 바이올린 수업을 신청해 배우고 있다. 구암고의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캠프'에는 인근 중학교 3년생 3명이 고교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이 교사에 따르면 이렇듯 특성화 강좌를 연계하는 과정에서 가까운 구역의 학교들끼리 자체적으로 하나의 벨트를 형성해 프로그램 효과를 높이려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이 샘낼 정도로 인기

이렇듯 학교 간 연계를 통한 방과후학교 운영은 지역사회 학생들의 사교육비 경감은 물론 학습욕구 충족과 선택권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방과후학교 운영 이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학생들의 73.6%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데, 그 중 77% 이상이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가정의 52.4%는 비싼 수강료를 그 이유로 들었다. '강좌를 보고 방과후학교에 참여하겠다'는 비율은 65.4%나 됐다. 그러나 단위 학교가 개설할 수 있는 강좌는 학교의 열악한 재정과 학생 수 부족으로 인해 강좌 개설이 제한되면서 학생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단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된 것이 우선 저렴한 수강료. 이번 여름방학 강좌의 수강료는 대부분 3만~4만원. 드럼이나 클래식 기타도 6만원대 정도이다. 학부모의 부담도 그만큼 낮아졌다. 그러다 보니 학원 2개 다니기도 벅찬 학생들이 여름방학 방과후학교 수업은 3, 4개를 듣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골라서 들으니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 전희빈(14·칠곡중학교 2년)양은 "초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클래식 기타를 잠시 배운 뒤 계속하고 싶었지만 근처에 학원이 없어 못 배웠다"며 "안 하다가 하니까 너무나 재미있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업이다 보니 재미있어 하고 그만큼 열정적으로 배운다"고 평가했다. 관천중학교 손미희 교사는 "드럼반의 경우 방학임에도 각 반에 30명의 학생이 신청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칠곡중학교가 파악한 '지역 연계 학교들의 2008·2009년 운영 현황 비교'에서 참여 학생 수가 학교마다 2~4배까지 늘어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칠곡중학교 김창식 교장은 "학교들이 특성화 프로그램을 연계해 공동 운영하고, 이에 지역사회가 뜨겁게 호응하는 성과를 확인했다"며 "이것이 바로 대도시의 방과후학교가 지향해야 할 교육 정책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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