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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이토 히로부미 '100년만의 만남' <1> 후손들에게 어떻게 기

하얼빈의 총성 100년…무덤도 없는 安의사·호화분묘 이토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있는 안 의사 동상. 1974년 세워진 동상 위에 비둘기의 배설물이 잔뜩 묻어있다.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있는 안 의사 동상. 1974년 세워진 동상 위에 비둘기의 배설물이 잔뜩 묻어있다.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 옛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동상. 1931년 세워진 이 동상에는 일본인 방문객들이 늘 끊이지 않는다.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 옛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동상. 1931년 세워진 이 동상에는 일본인 방문객들이 늘 끊이지 않는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다. 그로부터 100년. 죽이고 죽은 두 사람을 우리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안 의사와 이토, 둘 다 영웅임에 틀림없지만 한·일 국민들에겐 '간적'과 '테러리스트'라는 상호 적대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 양국 간에 얽힌 오랜 구원을 풀고 화해를 모색하는 관점에서 안 의사와 이토를 돌아보면 어떨까. 두 사람의 흔적이 배어있는 한·중·일 3개국 취재를 통해 두 사람을 100년 만에 지면에 초대해 만남의 자리를 주선해본다.

◆일본인들은 안중근을 궁금해 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서울 남산에 있다. 남산도서관에서 언덕길을 올라가면 앞쪽에 안중근 동상이 보이고 오른쪽에 기와 지붕의 큼직한 건물이 있다. 그러나 전시실에 들어서면 맨 먼저 비좁고 낡았다는 인상부터 받게 된다. 전시실 규모가 50평 가까이 될까. 1970년에 세워져 리모델링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하다. 전시물조차 그리 다양하지 않고 볼거리도 많지 않다. 안 의사의 유묵은 진품(서울역사박물관에 7점 보관)이 없고 모사본만 전시한다. 현 기념관 뒤편에 짓고 있는 현대적인 새 기념관이 내년 말쯤 완공될 때까지 아쉬움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평일에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한국에 오면 반드시 들러는 코스라고 했다. 김호일 기념관장은 "일본인들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대단한 인물을 누가 암살했는지 궁금해 한다"며 "이들에게 안 의사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역사적 진실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이토가 1963년부터 1984년까지 1천엔권 지폐의 인물로 나온 이후 안 의사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안 의사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지난해 시마네현의 한 중소기업인은 기념관 건립에 써달라며 100만엔을 기부했고 호세이(法政) 대학 교수도 100만원을 맡겨오는 등 일본인들의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안 의사가 남긴 '동양평화론'은 세계평화를 바라는 현대에도 유용한 메시지"라며 안 의사를 존경한다고 했다.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이 얼핏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이 열광적인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한국인들은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을 교과서나 책에서 보고 느끼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일본인들은 기념관을 대거 찾고 성금을 내놓는 등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과 이토의 흔적은?

천양지차(天壤之差·하늘과 땅 사이와 같은 차이)라고 할까. 안 의사의 사료는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지만 이토의 사료는 편지, 구술집, 각종 기록 등으로 넘쳐난다. 안 의사는 독립운동을 하다 31세의 나이에 죽었지만 이토는 내각총리대신을 4차례나 지냈고 68세에 죽었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감옥에서 남긴 200점의 유묵, 자신의 일대기를 기록한 '안응칠 역사', 미완의 '동양평화론'이 전부다. 현재까지 전기집은 10여권 나왔다. 반면 이토는 생전에 구술집 '유신 풍운록' '이토후작 원훈담' '이토 후작 연설집(3권)'을 남겼고 사후에는 전기집, 일화집, 서한집, 한시집, 사진첩, 영문전기 등 수백종이 발간됐다.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장은 "이토는 오래 활동한 정치가였기 때문에 글, 연설문이 많이 남아있지만 안중근은 잠시 활동했기 때문에 자료가 많지 않다"며 "한국에서 안중근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했다.

안중근과 이토의 흔적 차이는 사료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나라에서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동상·유품에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안 의사의 기념관은 남산 한 곳뿐이다. 그곳 외에는 안 의사를 기릴 만한 전시물이 아예 없다. 동상은 기념관 앞과 전남 장성군의 상무대, 하얼빈의 고려회관 등에 서 있다. 남산의 동상은 1974년 세워졌으며 상무대 동상은 숭의학원 안에 있었는데 1967년 남산으로 옮겨졌다가 현재 자리로 보내졌다. 하얼빈의 동상은 2006년 서울 구로구청 후원으로 고려회관 안에 세워졌다. 그러나 2006년 1월 하얼빈 중심가에 서있던 안 의사 동상은 중국 당국에 의해 철거돼 인근 백화점 한 구석에 내버려져 있다.

이토의 경우 유품과 옛집, 동상이 전국 곳곳에 깔려 있다. 유품은 출생지인 야마구치현 히카리시의 이토공 자료관, 야마구치현 하기시의 이토 생가, 시모노세키의 청일강화기념관, 가나가와현 오이소마치의 향토자료관, 도쿄 헌정기념관 등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동상은 일본의회 중앙정원과 중앙광장, 도쿄의 시나가와구 묘지앞, 히카리시의 이토공기념관, 하기시의 옛날 저택, 시모노세키의 청일강화기념관 등에 서 있다.

논문집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도서출판 선인)'를 펴낸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과)는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라며 "일본은 뛰어난 인물을 기리고 숭배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래서는 두 사람간 균형이 너무 맞지 않다. 안 의사는 너무 빈약하고 이토는 아주 풍족하다. 두 사람, 나아가 한·일간에 얽힌 구원을 풀고 화해를 모색하고 싶어도 한쪽 추가 너무 기울어진다. 의거 100주년이라고 떠들썩하기보다는 제대로 기념할 만한 것부터 만들고 채워넣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겠는가.

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장성혁 동영상기자 jsh052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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