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무뚝뚝한 자를 위한 변명

#장면1 : 한 학기를 마치고 강의 평가서를 확인해 보았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우선 자유 기술란의 한 구절이 강하게 다가온다. '교수님, 조금만 더 웃어주세요. 딱딱한 인상이 수업에 부담이 된답니다.'

#장면2 : 교회에 갔다. 설교 시간 중에 목사님은 인상 굳은 사람을 아예 죄인 취급하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에 기쁜 표정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사람입니다."

#장면3 : 선배 교수가 시골에 아름다운 집을 지어서 입주하였다. 축하도 하고 집 구경도 하고 싶어 찾아갔다가 난데없는 봉변을 당했다. 손님으로 오신 어떤 분이 다짜고짜 "인상이 너무 굳어있어요. 좀 웃으세요. 웃는 인상이 좋지 않습니까?"라고 면박을 주는게 아닌가.

세 장면 모두 필자가 겪은 실화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웃는 표정을 지으려 기를 쓰고 있다. TV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급 연사들은 우리들에게 웃는 얼굴을 만들라고 강요한다. 웃는 얼굴은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단체에서는 전체 구성원들이 매일 '스마일' 연습까지 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이 어색하고 매우 불편한 경우도 있다. 마음과 달리 웃는 표정을 짓느라 고역인 것보다는 차라리 내 모습 그대로 보아달라고 호소하고 싶을 때도 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웃음이 많은 사람에게 '헤프다', '실없다'라고 하며 부정적 평가를 한 반면, 웃음이 적고 표정이 근엄한 사람들을 평하여 '진중하다', '진지하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였다.

전통 사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가서 머물던 처소의 이름을 사의재(四宜齋)라 하였다. 그 의미는 '네 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공부'라는 뜻으로서, 즉 생각을 맑게 하고, 용모를 엄숙하게 하며, 말은 과묵하게 하고, 행동을 무겁게 하는 공부를 강조한 것이다.

일찍이 시인 고은은 '만인보'라는 시집에서 박종홍 교수를 평하여 "어린 시절부터 근엄했다 (…) 그가 걸어가면 향기로웠다"라고 하였다. 나 또한 요즘은 '시대를 잘못 만나(?)' 웃지 않는다고 구박받기 일쑤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점잖고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아무리 변명하더라도 나 자신도 인상이 굳어있는 사람보다는 웃는 얼굴의 사람이 더 좋은 것을.

장 윤 수 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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