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미디어법, 여론의 다양성 보장 어렵다

거대 기업'신문사 여론 독과점 지방 언론도 지배 폐해 불보듯

지난달 22일 한나라당이 독자 상정한 신문법과 방송법 등 일명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강행처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재투표, 대리투표,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된 국회를 목격해야 했다. 미디어법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여당은 그것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재투표까지 벌이며 강행처리한 것인가? 대체 미디어법이 무엇이기에 야당은 투표 진행을 막기 위해 의장석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싸우다가 장외투쟁에 나서게 된 것일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미디어법이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그리고 지방에 사는 지역민으로서 미디어법이 지역 언론에 어떠한 폐해를 가져올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미디어법의 핵심 내용은 대기업과 신문사가 케이블 방송의 보도전문채널과 종합편성채널, 그리고 지상파방송을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미 여러 신문사들이 각각 케이블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로의 진출은 금지되어 왔다. 그러나 얼마 전 강행 처리된 방송법에 의하면, 신문사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앞으로 지상파 방송에 10%, 그리고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등의 케이블 방송에 30%의 지분 소유 허용으로 방송 참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사 진출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대기업의 방송참여가 가져 올 수 있는 폐해는 삼성과 중앙일보의 관계에서 이미 드러났다. 한때 소유주가 삼성이었던 중앙일보는 삼성 관련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침묵하거나 축소 보도했던 것이다. 대기업이 지분을 소유하고 방송에 참여하게 되면 이와 같은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나기 쉽다. 신문사의 방송참여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 방송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신문사는 사실상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이다. 이들은 전국 신문시장의 70%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정치적 목소리도 대동소이하다. 만약 이들이 여타 대기업과 연합체를 형성하여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 또는 보도전문채널을 운영하게 된다면 그 영향력은 엄청나게 되는 것이다. 거대 기업과 신문사에 의한 여론 독과점이 목전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언론보도에 있어서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해당 기업과 신문사의 이익이나 주장이 우선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미디어법은 지역 언론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 및 신문사의 지역 지상파 방송 10% 지분 참여가 당장 허용되었으며, 신문의 복수 소유 또한 허용되었다. 이는 자본력과 시장 지배력에서 앞선 조선'중앙'동아일보 등과 같은 거대 신문사들이 지방 신문을 인수'합병하거나 새로운 신문을 창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대기업과 신문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역방송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중앙의 거대 신문사들이 지역 방송이나 신문에 진출하게 되면, 경영합리화라는 이름 아래 기존의 지역 언론 취재 인력을 감소시키고,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여러 신문과 방송에 동시에 게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 취재인력의 부족으로 지역현안에 대한 보도는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중앙의 신문사가 지역 신문을 인수'합병하게 되면, 지역 언론이 지역의 주장과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기 어렵게 된다. 그동안 지역 균형 발전이나 수도권 규제 철폐 등 지방의 이익이 걸린 정책 사안에 대하여 중앙의 신문사들은 수도권의 시각으로 보도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언론의 위기는 바로 지역의 위기가 되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다. 지역과 소수자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이러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정부'여당에게 유리한 여론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진정 '여론의 다양성 확보' 및 '글로벌 미디어 육성'에 있는 것이라면, 정당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미디어법 내용을 다시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여론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최현주 계명대 교수 미디어영상학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