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에서 한 순간의 '만남'은 전생에서 억겁의 인연이 쌓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만남은 어려운 일이고,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의 만남은 잉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잉태는 부모님과의 첫 만남입니다. 그리고 출생과 더불어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하게 됩니다. 형제자매를 만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친족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모르는 많은 남들을 만나게 됩니다.
만남은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거하는 공간과 공간을 가득 채운 수많은 사물들과 만나게 됩니다. 당장 입게 될 배냇저고리, 포근한 담요와 나지막한 베개, 예쁜 요람과 딸랑이, 산실에 놓인 여러 가지 사물들과 만나게 됩니다. 하나하나가 소중한 만남인 것이고, 그 만남을 통해 조금씩 갖추어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만남이 소중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만남'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사람됨'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처음 만나게 되는 공기는 그동안 탯줄에 의존하던 습관을 버리게 하고 허파 호흡을 하도록 변화시킵니다. 이런저런 사물들과의 만남은 소리와 냄새, 색깔을 인식하고 구별할 수 있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 사람의 말을 만나게 되면 말을 듣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말과의 만남 가운데서는 사고와 생각도 만들어지게 됩니다.
만남이 어렵고도 중요한 것은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주체 사이에 아주 특별한 인연이 존재해야만 만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찰나 지간에 수많은 만남의 기회가 오고 가지만 실제 만남이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부지불식간에 스쳐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만남의 조건들이 소멸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황 석굴'이 바로 그렇습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만남을 주선했고, 그 자체가 만남의 주체였던 돈황 석굴이 곧 세상과 인연을 끊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 정부가 돈황 석굴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사람과 격리시킬 계획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발자취와 숨결이 돈황 석굴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돈황은 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현(敦煌縣) 남동쪽 20km 지점에 있는 불교 유적입니다. 광대한 중국 영토가 끝나는 곳, 신비로운 서역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입니다. 덕분에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당나라 때까지 번영을 누리면서 동'서양의 만남을 주관했던 곳입니다. 불상이나 벽면의 양식을 보면 인도 서역풍, 중국의 재래 양식, 티베트 양식 등 다양한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수는 1천여개의 석굴이 벌집처럼 뚫려 있는 '천불동' 즉, 막고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칫 사라져버릴 인연, 돈황 석굴을 만나시려면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 이야기』(연암서가, 2008)를 먼저 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일본 다이쇼시대 소설가인 마쓰오카 유즈루(松岡讓'1891~1969)가 1937년에 집필한 것을 조경숙'박세욱 교수가 번역한 책입니다. 내용은 열강들의 약탈이 본격화되던 시기인 청(淸) 광서(光緖) 26년(1900년) 무렵에 돈황 막고굴에서 우연히 발견된 엄청난 양의 고대 사경(寫經)과 문물을 둘러싸고 벌어진 실크로드 탐험대들의 도굴 이야기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 당사자 중에는 우리도 끼여 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대부분이 그러하듯 스토리 하나하나가 흥미를 자극합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생생한 역사적 사실들 때문에 '문화사적 소설'이라고도 하고, 화자인 '노인'이 자신의 꿈을 '나'에게 들려주는 '~의 이야기(모노가타리)'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시각을 가진 독자이건 책 속 여행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수많은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돈황 석굴과의 만남은 물론이거니와 고대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기인이사와 잡놈잡사까지 모든 유형의 사람, 사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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