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27·여)씨는 한 남자와 두번 결혼식을 올린다. 첫번째 결혼은 두달 전 마을 성당에서 먼저 했다. 지인 300여명이 참석했다. 형형색색의 폭죽이 동원됐고, 말을 타고 등장한 신혼부부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물로 주고받았다. 결혼식 직후 이씨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거대한 나룻배를 타고 둘만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알프스산을 배경으로 한 높다란 성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하지만 이 결혼식은 현실이 아닌 온라인 게임상에서의 사이버 결혼식이다. 이씨는 "함께 게임을 즐기다 게임 안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었고 사이버 머니로 축의금도 받고 결혼식을 올렸다"며 "게임상에서 쌓은 인맥이 현실에서의 친구보다 더 친근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올해 가을쯤 가상 남편과 실제로 백년가약을 맺을 예정이다. 두번째 결혼식은 진짜 결혼식장에서 실제 친척을 모신 가운데 치른다.
최근 아버지를 여읜 김인철(32)씨는 함께 슬퍼해 주는 이들이 있어 큰 위로가 됐다. 사이버 세상에서 만난 혈맹원(게임 안 동호회)들은 부친상 소식을 혈맹에 소속된 400여 캐릭터들에게 전한 뒤 저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만장을 달게 하고 아버지의 장례를 엄숙하게 치렀다. 물론 사이버상이다. 김씨는 "혈원들이 치러준 장례식이 현실에서보다 더 큰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3년째 한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박모(28)씨는 다음주 충남 서산에서 있을 '현모'(현실에서 만남을 갖는 것)에 참석할 예정이다. 박씨는 "이번 현모에는 혈맹원 100여명이 참석한다는데 현모에 나가 예쁜 여자친구를 사귈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구대 홍덕률 교수(사회학과)는 "녹록지 않은 현실보다 평등한 사이버 가상공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현대인들이 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사이버 세상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김모(31)씨는 2년째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다 최근 책을 덮었다. 한달 전 친구에게서 배운 한 온라인 게임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 김씨는 "현실에선 취업 못한 능력 없는 남자로 통하지만 게임 속 세상에서는 모두 평등한 위치에서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벽 늦도록 게임을 하다 PC방에 걸린 거울을 통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허무함이 밀려온다고 했다. 특히 게임을 시작하고부터 작은 일에도 화를 내는 성격으로 변해 걱정스럽다. 컴퓨터를 끄는 순간 직장도 없고 구직노력도 하지 않는 30대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얼마 전에는 한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30대 남성이 살인을 하고 시신의 신체 일부를 자르는 등 게임 속 폭력성이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영남대병원 서완석 정신과 소아청소년 담당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폭력성이 짙은 온라인 게임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현실에서도 난폭해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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