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儒敎의 부활, 儒學의 재활용

'孔子(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儒學(유학)의 본향인 중국에서도 사회주의 정권의 등장과 함께 공자는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적잖은 세월 숨죽어 있었다.

그런 공자가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하면서 건국 이데올로기였던 마르크스주의는 천덕꾸러기가 된 반면 그동안 터부시하던 공자와 유학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 간부들이 中庸(중용)을 읽고, 인민대학 교정에 공자의 동상이 들어섰으며, 초등학교 과목에 유가의 고전이 신설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공자의 3천 제자가 출현했고, 공자의 영화도 만들고 있다.

40여년 전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공자의 묘를 파괴하고 고전을 불태우던 장면을 돌이켜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왜 이렇게 공자와 유교사상 복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으로서는 자유와 민주라는 미국과 서양의 모토를 대신할 사상과 이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중국은 그것을 유구한 역사 속에 흠뻑 녹아있는 자신의 문명과 문화에서 되찾아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최근의 사회적 혼란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아이콘으로 '선비'가 급부상하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과 영주 소수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는 선비정신을 배우려는 각계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조선의 유학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유교를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사상, 유통기한이 지난 空理空論(공리공론)'쯤으로 여겨왔다. 유교는 어설픈 논객들이 함부로 논단해도 될 단순한 사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유교는 '千(천)의 얼굴을 가진 문화현상'이라고 할 만큼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처럼 유교가 그렇게 혁명적 실천기능을 담당했던 예는 역사상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士禍(사화)로 얼룩진 16세기 조선의 위기와 혼돈의 시대를 사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한국 정신사의 거목, 南冥(남명) 조식과 退溪(퇴계) 이황의 유학정신이 그렇다.

남명의 유학정신은 주자학의 범주를 넘어 양명학과 불교, 노장, 법가적 요소를 두루 포괄했을 만큼 개방적이었고, 율력과 형법, 천문, 지리, 의학, 군사 등 실용학문을 중요시할 만큼 실천성을 지녔다.

남명의 유교는 실천철학이요 마음의 철학이었다. 세계의 변혁을 지향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인간주체인 자신의 혁신문제에도 주목했던 것이다. 퇴계 또한 남명과 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한 혁신사상가였다.

자신이 마주친 조선의 현실에 깊이 고뇌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역사적, 실천적 인물이었다. 16세기를 황폐화하고 있던 훈구파시대를 넘어 새시대를 모색하기 위해 '氣發理乘'(기발이승)을 '理發氣隨(이발기수)'(理가 發하면 氣가 뒤따른다)로 수정, 보완하며 주자학의 창조적 변용을 도모했던 것이다.

16세기 퇴계의 사상은 17,18세기 실사구시의 요구에 부응해 實學(실학)으로 거듭났고, 서구문명과 만나면서 西學(천주교)으로 흘렀으며, 19세기 격동의 시대에는 민초들의 함성과 함께 東學(동학)으로 나타났다. 제국주의가 이 땅을 유린하던 20세기 전반에는 독립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지식정보화 시대인 오늘날 남명과 퇴계의 철학과 사상은 어느 뜨거운 가슴 속을 흐르고 있을까. 산업화 시대의 기적적인 경제성장과 문화가 경쟁력인 21세기의 韓流(한류) 물결은 정녕 유학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일까.

우리는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의 내면과 사상을 지배했던 유교를 얼마나 알려고 애를 썼는가. 영어 공부의 100만분의 1만 투자를 해도 편견과 오해로 가득한 유교관을 떨쳐버리고 조선 유교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포착하고 오늘 그리고 내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정신적 사상적 토대로 재활용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21세기의 중국이 유학을 복원하듯이 조선의 실천 유학에도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는가. 오늘의 시대정신에 걸맞게 창조적으로 변용할 수는 없는가.

조향래(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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