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유씨와 선원은 언제까지 붙잡아 둘 건가

북한은 미국 여기자 2명을 풀어주고 난 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 클린턴은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했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전면 부인했다. 북한은 미국이 반박을 하든 않든 사과로 몰고 갈 심산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미국 전 대통령이 굽히고 들어가는 형식을 연출해 여기자 석방을 시혜처럼 과시하려는 게 북한의 의도였으니 얘기할 것도 없다.

어제 클린턴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와 가족들 품에 안겨 울음을 쏟는 여기자들을 보고 미국 국민들은 환호했으나 가슴 한 쪽에 분노가 치미는 경우들도 적잖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취재활동 도중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 하나로 무지막지하게 12년형으로 처벌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경악했을 것이다. 21세기 문명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도한 병영집단 국가수준에 혀를 차고 분노했을 것임은 물어보나마나다.

여기자 석방 과정 또한 세계의 웃음을 사기에 딱 십상이다. 클린턴 같은 거물을 불러들여야 위세가 선다고 판단한 것에서부터 북한체제의 꾀죄죄한 자격지심을 읽을 수 있다. 단순한 사건이라면 사건일 수 있는 이 문제에 세계 최강국 전직 대통령이 찾아가 사정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고 김정일 위원장 위상이 만방에 떨쳐지며 올라갔나. 옹색해 보인 쪽은 북한이다. 덜떨어진 동네깡패들 발상이나 다를 바 없다. 북한은 체제의 유연성을 내보일 수도 있는 호기를 놓치고 오히려 체제의 본색인 폐쇄성, 폭력성만 드러내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북한에도 이로운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붙잡혀있는지 오늘로 130일째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잘 모시고 수시로 동향을 전했던' 여기자들과 달리 동포인 유씨는 깜깜무소식 상태다. 동해에서 끌려간 선원 4명도 생업으로 고기잡이를 하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도 또 누군가 북한에 찾아가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풀어주지 않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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