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전쟁 직후 프랑스가 대서양을 오가는 미국 선박들을 마구잡이로 나포하기 시작했다. 전쟁 때 미국을 지원하느라 프랑스의 재정이 거덜난 상황인데도 미국이 1794년 영국과 피해 보상을 한다는 런던조약을 맺자 불만을 품은 것이다. 양국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자 1797년 존 애덤스 미 대통령은 자국 선박 보호를 위한 통상조약을 맺도록 마샬 등 특사를 파리로 보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은 미국 특사들은 프랑스 측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제안을 받게 된다. 1천2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딸레랑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뇌물로 25만 달러를 주면 협상을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특사가 이를 보고서에 담아 본국에 보내자 애덤스 대통령은 참다 못해 이를 폭로했다. 미국인들은 격분했고, 양국은 전쟁 직전까지 갈 정도로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협잡이나 다름없는 협상 조건을 내건 루시앵 오트발 등 3명의 프랑스 대표들을 보고서에 X, Y, Z로 표시해 이를 'XYZ사건'으로 부른다.
북한을 전격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억류된 여기자들을 데리고 5일 밤 미국에 도착했다. 억류 기자들이 가족 상봉을 모두 마친 뒤에야 트랩에서 내려선 클린턴은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의 인사말을 옆에서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웅은 말없이 상황을 지켜만 보는, 할리우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물론 그의 침묵이 미국식 정서나 특사 임무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마치 교감이라도 한 듯 오바마 대통령도 "돌아와 기쁘다"며 짤막하게 입장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북한이 '인질 외교'의 성공에 한껏 도취된 사이 미국 정부나 특사단 모두 '인도주의적 임무' '개인적인 일'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며 말을 아꼈다.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여기자를 석방시키기 위해 '사과 방문'을 했지만 정치적 현안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은연중 내비친 것이다. 철저하게 상황을 계산하고 연출한 것이다.
20시간에 걸친 클린턴의 '여기자 구하기'가 한 편의 이벤트로 끝날지, 북한의 기대대로 행운의 열쇠가 돼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의 단초가 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다만 특사의 침묵 뒤에 감춰진 북'미 간 팽팽한 자존심 싸움이 전략 공방전으로 치열하게 전개될지 아니면 XYZ사건처럼 비화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지는 지켜볼 일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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