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녹색지대 사람들]영남대 명예교수 박해동씨

정원을 거닐면 삼림욕이 되고…

대구에서 청도 각북으로 넘어가는 길은 언제 찾아도 아름답다. 바닥을 드러냈던 가창댐이 오랜만에 담수를 가득 머금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짙푸른 녹음 사이로 이어진 산길은 싱그러움 그 자체다.

꼬불꼬불 헐티재를 넘어 각북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찜질방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재촉하면 6채의 전원주택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서 있는 작은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비슬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마을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다. 한눈에 봐도 전원주택 명당이다. 교육계 인사들의 전원주택이 많아 일명 '교수타운'이라 불리는 이곳에 박해동(74) 영남대 명예교수의 집이 있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뒤 1971년 교수로 부임해 2001년까지 영남대에서 후학을 지도한 박 교수는 1998년 전원주택을 짓고 도심 생활을 청산했다. "대구에 살 때도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을 더 선호했습니다. 정년퇴임 몇 해 전 노년생활 보낼 곳을 찾기 위해 대구 인근을 샅샅이 뒤진 끝에 여기를 발견했습니다."

박 교수의 전원주택은 3천970㎡(1천200평)의 너른 대지위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4가구가 함께 전원타운을 건설하기로 했으나 IMF 사태로 인해 박 교수 혼자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예상보다 규모가 커져 버렸다. 이 가운데 절반은 정원 및 생활 공간, 나머지는 과수원이다.

'미술연구소'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문패를 대신하는 집에 들어서면 대여섯그루의 소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훌쩍 커버린 소나무가 제법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숲을 돌아가면 손님용 객실, 화실, 주거공간, 작품보관실 등 4채의 하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실과 작품보관실, 주거공간은 독립된 공간이지만 나무데크로 연결돼 있어 건축학적으로 하나의 완성된 구도를 만들고 있다.

건물은 전원주택 이미지에 맞게 100% 목재로 지어졌다. 실내에 들어가면 은은한 나무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친환경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건물은 빈틈 없이 꽉 짜여진 일괄 구조로 되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이 특징이다.

정원은 박 교수가 직접 설계를 한 뒤 나무를 구입해 조성했다. 소나무숲 옆 잔디정원에는 감나무와 60년 된 모과나무가 서 있고 수련이 떠 있는 작은 연못에는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토해내고 있다. 느티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제공하는 연못 옆에는 흔들의자가 놓여 있다.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기에 참 좋은 공간이다.

과수원에는 요즘 한창 제철을 맞은 복숭아를 비롯해 감, 대추, 자두, 매실 등 10여가지 80여그루의 과실수가 심어져 있다. "스스로 반 농사꾼이 다 되었다"고 말하는 박 교수는 직접 농사를 짓는다. 수확하는 열매는 제자, 지인, 친척들에게 나누어준다. 수확량에 맞춰 술을 담그다 보니 매실주, 모과주 등은 몇 독씩 담근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자연을 벗삼아 잔을 나누고 돌아갈 때는 손님들 손에 이것 저것 들려준다. 모두 전원생활을 하면서 누리게 된 나눔의 축복이다.

전원생활이 주는 축복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공기 좋고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삼림욕은 가장 기본적인 혜택. 새소리,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여름 밤이면 집 앞 계곡에서 반딧불이 피어난다. 산책을 나온 노루를 만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박 교수가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힘든 과수원일을 해낼 만큼 정정한 이유도 전원생활 덕분이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곳에서 박 교수는 오전에는 정원'과수원 일을 하고 오후에는 작품 활동을 한다. 해가 저물면 음악을 듣는다. 화실 한쪽에는 오디오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40여년 전 구입했다는 진공관 앰프.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성능은 변함이 없다.

요즘 박 교수는 개인전(10월 28일~11월 2일' 대백프라자 갤러리) 준비로 어느 때보다 더 바쁘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쳤지만 퇴임 후에는 회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주로 다루는 작품 소재는 탈이다. 1960년대부터 고미술을 수집해온 박 교수가 우리 전통에서 작품 소재를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수천점에 이르는 대부분의 고미술을 정리했지만 고미술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음을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전원생활은 많은 노력이 뒤따른다. 아파트 생활과 달리 사람 손이 가야할 곳이 많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취향이 맞아야 합니다. 자연과 융화될 수 있는 사람만이 전원생활이 가능합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크게 지었지만 전원주택은 작아도 충분히 제역할을 합니다. 도시에 비해 땅값이 싸기 때문에 작게 지으면 돈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땅을 밟고 살아야 건강합니다"며 전원생활의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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