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이야 오랫동안 잔상으로 글썽거리겠지만
저수지가 큰 외눈 천천히 닫아가는
저녁의 이 한때가 나는 좋다
방죽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캄캄해지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하루가 마감되는
이런 무료라면 직업은
향기에 향기를 덧보태는 일,
기껏 손바닥만한 저수지나 관리하는 일과지만
천품을 헤아려서 주어진 것
아침부터 철새 떼가 내려앉았으니 지금은 늦가을
저수지는 털가죽보료를 펼쳐
구름들을 주워 담는다 고요한 일렁임이
기슭을 깨울까말까 수면을 뒤덮고 가지만
나는 또 물비늘 거슬러 오르는 상류 쪽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서
물결무늬가 안심하고 갈대숲에 드는 것을 지켜본다
밤은 누구에게나 발설되지 않은
저수지의 사원이 저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
아마도 우리 현대시사에서 저수지를 노래한 시편들을 모아 을 따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저수지의 상상력이란 물결, 고여 있다는 괴로움, 물 아래의 흐림에 대한 성찰 등이다.
김명인의 「저수지 관리인」은 늙어가는 저수지를 저수지 관리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이다. 시간 저수지 관리인의 하루를 회상하는 독백체이다. 저수지는 모든 것을 배려하는 늙은 사람의 포즈를 가지고 있다. 철새 떼와 구름들의 쉼터, 저수지는 털가죽보료를 펼쳐 그들을 쉬게한다. 물결무늬의 잠조차 저수지는 깨우지 않으려 한다. 늙은 저수지와 늙은 저수지 관리인은 서로에게 기대면서 서로를 닮아간다. 사물의 천품이 읽히는 시편이다.
김명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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