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사람 잡는 정체성

'표범을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경계인의 눈에 비친 정체성

아민 알루프의 '사람 잡는 정체성'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민 알루프는 1949년 레바논 출신으로 베이루트 대학에서 공부하고 12년 동안 주요 일간지에서 국제부 기자로 활약하다가 1979년에 종교 분쟁에 휩싸인 조국을 떠나 파리에 정착했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마니', '사마르칸드', '동쪽의 계단'등을 썼다.

그런데 왜 하필 사람 잡는 정체성일까? 저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도록 부추길 때 그 속뜻은 그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소속을 찾아내라는 요구라고 본다. 단 하나의 종교적인 소속, 국가적인 소속, 인종적인 소속, 민족적인 소속들……. 자신이 하나의 소속이 아니라 복잡한 소속으로 이루어진 정체성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사회의 변두리 계층으로 소외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각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배합에 따라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 단 하나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특정한 정체성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거나 독촉받는 것은 모든 사회 공동체의 광신자들과 외국인 혐오자들, 너와 나, 우리 개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완고하고 단순한 생각들 때문에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를 단 하나의 소속에만 환원시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학살자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정체성에 대한 저자의 고민은 왜 이토록 깊었을까? 오랜 내전에 시달린 아랍국가인 레바논에서 태어나 서른해 가까이 살아온 조국을 등지고 프랑스를 제2의 조국으로 선택한 사람, 프랑스에서 스무해 이상을 살았고 가톨릭교도이지만 어느 한 곳에 명확히 소속되지 못하는 경계인. 이러한 출신과 삶의 조건이라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전쟁 중인 나라의 이웃에서 폭탄이 날아오는 구역에서 살았으며, 임신한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밖에서는 포탄소리가 들리고 안에서는 학살당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나 적이 곧 공격해올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게 떠돌아다니는 지하실의 피난처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레바논 내전의 초기에 스물여섯살이 아니라 열여섯살이었다면, 아끼는 사람을 잃었다면, 다른 사회적 환경이나 공동체에 속했다면 사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한다.) 우리는 인종 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하지만 그런 살인자가 수천명이나 되고, 또 그런 현상이 대규모로 일어날 때에는 광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저자는 모든 사회 구성체의 구성원들은 모욕을 받거나 위협을 받으면 얼마든지 살인자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하이드씨가 존재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러한 괴물적인 본성을 출현시킬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어떻게 표범을 길들일 것인지 묻는다. 왜 표범일까? 만일 우리가 표범을 괴롭힌다면 표범이 우리를 죽일 것이기 때문에. 표범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둔다 해도 표범은 우리를 죽일 것이다. 가장 나쁜 일은 표범에게 상처를 입힌 다음 자연 속에 풀어 놓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표범을 길들일 수도 있다! 정체성은 박해나 자기만족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관찰되고 침착하게 연구되고 이해되며 길들여져야 한다. 우리가 세상이 정글로 변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학살과 추방, 제노사이드로 얼룩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정체성 갈등도 점점 심해지는 추세이다. 남북분단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인 정체성의 갈등, 경제적인 정체성과 관련된 빈자와 부자 간의 갈등.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진보하는 방법은 이 내적 정체성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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