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조깅, 장기, 바둑, 게이트볼, 테니스, 배드민턴, 에어로빅….'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운동이든, 간단한 도구 몇 개로도 온갖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신천은 제 모습을 수십 가지로 바꿔주는 공간이다. 여름 물놀이장에서 겨울 썰매장까지.
신천은 구간마다 특징도 안고 있다. 북쪽 침산교부터 성북교~도청교~경대교~칠성교~신천교~신성교~신천철교~동신교~수성교~대봉교~희망교~중동교~상동교~가창교까지.
신천은 대구시민들에게 운동장이면서 공원, 그리고 놀이터였다. 신천은 오전 4시 30분 눈을 떠 이튿날 오전 2시에야 잠시 휴식에 들어간다. 엄밀히 말해 신천은 하루를 두 번 쪼갠 삶을 사는 것 같았다. 12시간 단위로 신천은 활기를 띠었다가 2, 3시간가량의 휴식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한 품에 안는 신천의 24시를 들여다봤다. 신천의 변신은 무한해 보였다.
◆05:00
동이 터올 때쯤부터 신천은 시민들을 맞았다. 부지런한 몇몇은 이 시간대에 벌써 운동복 차림이다. 가로등도 하나씩 꺼지고 자연광이 도심을 비추면 그들의 눈에 눈곱이 묻어있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 신천의 비릿한 풀과 나무 냄새는 운동으로 땀을 쏟아낸 이들의 체취와 섞인다. 저 멀리 침산교에서도, 도심에 있는 수성교에서도 운동하는 이들의 몸짓은 매일반이다.
오전 6시가 되면 대봉교와 희망교 등 신천에 인접한 아파트가 몰린 곳은 어김없이 에어로빅 등 단체 운동으로 땀흘리는 이들로 북적인다. 출근 시간대 러시아워로 몸살을 앓던 신천대로와 동로의 차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 때쯤이면 게이트볼을 즐기는 노인들의 독무대가 된다. 신천의 게이트볼 경기장은 14면. 적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간간이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 등교를 마친 주부들의 운동이 이어진다. 이런 풍경은 오전 10시쯤이면 사그라진다.
◆12:00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전후로 화이트칼라 몇몇은 패스트푸드를 들고 신천을 찾는다. 나무그늘 아래는 더없이 좋은 식탁이다. 삼삼오오 모여 하천바람을 맞으며 먹는 점심은 소풍 나온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동신교 인근 세동병원 환자들도 김밥, 샌드위치 등 가벼운 식사거리를 사와 돗자리를 펴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름인 탓에 운동하는 사람은 일단 스톱. 자전거로 이동하는 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다리 밑 아니면 나무 아래 오롯이 모여있다. 식사 후 낮잠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공공근로를 하는 이들은 함께 모여 다리 밑에서 나란히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파리 센강이 부럽지 않은 평화로운 낮시간대 신천변이다. 이 시간대에 만난 김영화(80·중구 삼덕동)씨와 김부민(75·중구 동인동)씨는 "우리는 경로당에 안 간다"며 "25년 동안 이곳은 영원한 휴식처이자 우리 동네의 보배"라고 말했다.
주부 김은숙(33·동구 신천동)씨는 배낭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싸서 이곳으로 와 아들, 딸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아들은 잠자리채를 들고 잠자리도 잡고 물속에 담가 고기를 잡아보기도 했다. 딸은 곤충채집용 박스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15:00
시에스타(스페인어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낮잠을 자는 습관'). 신천에도 낮잠을 즐길 여유가 찾아든다. 불볕더위가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주말은 다르다. 주말에는 끊이지 않는 발길 때문에 쉴 틈이 없다.
◆17:00
어디에 숨었다 나왔는지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하루종일 뜀박질하는 이들은 릴레이하듯 사람만 바뀌어가며 뛰고 있다. 이제부터는 굳이 그늘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천 곳곳이 청량감을 준다. 오후 7시부터 9시까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때. '자전거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로 많은 자전거와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사고 위험도 높은 시간대. 하지만 신천의 낭만적인 모습은 오후 9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신천의 14개 교각 아래는 젊은이들의 차지가 된다. 교각 아래 조명이 없는 신천은 데이트코스로 인기다. 작은 초 하나만 있으면 분위기 잡는 데도 최고다.
◆24:00
자정을 전후로 술판을 벌이는 몇몇 이들도 눈에 띄지만 새벽 운동을 즐기는 이들도 적잖다. 여름 땡볕을 피해 야간에 하는 운동은 시원한 신천 바람과 버무러져 끊을 수 없는 습관이다. 농구 코트에는 젊은이들이, 체육시설에도 다양한 나이대의 누군가가 들러붙어 땀을 흘린다. 오전 1시를 넘어서면 인적이 드물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숫자도 손으로 꼽을 만큼 줄어든다. 저 멀리서부터 껌껌한 물체가 접근해오면 서로가 긴장하는 시간대. 교각 아래면 상황은 더 긴박해진다. 100m마다 하나씩 설치된 가로등도 정작 교각 밑에서는 불이 꺼져 길게는 500m 정도의 구간이 암흑으로 뒤덮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교각 밑은 비둘기들의 잠자리에 그치고 있었다. 다른 지역의 조명등과 대조되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이 시간대에는 오토바이도 등장한다. 신천 자전거 도로는 오토바이 진입이 금지돼 있지만 달리는 자전거 수만큼 적잖은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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