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골디락스' 출구 전략

경제 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일시에 대량으로 풀었던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출구 전략(Exit Strategy)을 언제 실시할 것에 대한 논란이 활발해지고 있다. 조기 추진론은 국내 경기가 빠르게 회복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지금부터 서둘러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신중론은 아직은 국내외 경제가 불안하기 때문에 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과거 주요국들의 경험을 볼 때 출구 전략은 매우 신중한 경기 판단과 전망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경기 흐름을 오판하여 너무 빨리 출구 전략을 시작하면 제2의 경제 위기로 내몰리게 되는 까닭이다.

이의 대표적 사례가 1920년대 말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 미국의 경기 재침체와 1990년대 일본의 장기 경제 침체 현상이다. 대공황 시기 때 불어났던 경기 부양 자금을 미국연방준비위원회(FRB)가 회수하기 시작하자마자 미국 경기는 다시 깊은 경기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일본 역시 1980년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거 늘어났던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1980년대 말에 전격적인 금리 인상 등을 단행했으나,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깊은 경기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출구 전략의 시기를 조금만 놓쳐도 경기가 과열되고 자산 시장에 거품이 잔뜩 껴서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번에 초래된 세계 경제 위기는 2000년대 초반에 증가했던 세계적인 과잉 유동성을 제때에 회수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은 경기 활성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물가 상승 부담은 해소하는 '골디락스'(Goldilocks)형 출구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는 본격적 경기 회복 국면에 진입하기까지는 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과 같은 거시적 출구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최대한 삼가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는 2009년 상반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 회복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대외적인 부러움마저 사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소규모 개방 경제로서 대외 여건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제 정책의 효과도 빠르게 나타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재정 지출 규모 등이 축소되면 국내 경제는 곧 바로 경기 활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살아나는 국내 경기 불씨가 내수 중소기업으로까지 이어져 전체 경기가 살아나기까지 확장적 금융과 재정 정책 기조는 유지되어야 한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기도 전에 금리를 올리는 것은 실제 경기뿐만 아니라 경기 심리마저 급속히 냉각시키는 냉매제 역할을 할 우려가 크다.

두 번째,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 영향이 큰 거시적 출구 전략을 추진하지는 않더라도, 경제 내 부분적인 경기 과열을 막는 데 필요한 미시적 출구 전략은 시의적절하게 추진해야 한다. 외환 위기를 막기 위해 시중에 풀었던 외화 유동성을 흡수하고, 일부 수도권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축소하거나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확대 적용하는 것 등은 이를 위한 대표적인 정책 방안들이다. 또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시혜성 재정 지출 자금들도 점차 축소해 나가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경기 확장 정책을 유지하여 경기 회복 기운을 계속 살려나가되, 미시적으로는 국지적 맞춤형 거품 제거 수단을 동원하여 경제 안정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세계적 정책 공조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은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된 지구촌 경제 시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 나라의 금리 수준이나 가격 수준에 따라 물적, 인적 자원이 손쉽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수준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한국만 금리를 올리게 되면 금리 인상 효과는 기대한 만큼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 더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 한국으로 자금이 몰리는 까닭이다. 따라서 미국이나 유럽, 일본, 중국과 같은 주요국들의 금리 정책 등을 감안하여 국내 출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이 의장국으로 역할을 할 G20 회의 등에서 출구 전략에 대한 정책 공조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구 전략은 원래 군사 작전에서 유래한다. 군사적으로는 주로 실패한 작전에서 남은 병력과 물자를 안전하게 빼오는 전략을 뜻한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강구되는 출구 전략은 성공적인 경기 확정 정책을 제대로 완성하는 마무리 전략이 되어야 한다.

유병규(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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