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에도 맑은 의식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을 얻었을 때처럼 신에 대한 경건한 감사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테레사 女帝(여제)가 병석에서 나눴다는 대화도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던져 준다. '마마, 괴롭지 않으신지요?' '아니다. 죽기에 알맞게 편안하다.' '조금 주무시지 않겠나이까?' '아니다. 잘 수는 있지만 자서는 안 되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不知(부지)중에 그를(죽음) 만나서야 되겠느냐. 깨어서 맞아야지.'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떠난다. 그래서 역사 속의 인물들은 병석에 누워서도 의식이 깨어있을 때 무언가 혼이 담긴 말들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병석에 누워 힘든 투병을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치적 평가를 떠나 전직 지도자로서, 또 한 노인으로서 쾌유를 빌면서 잠깐이라도 맑은 의식으로 되돌아왔을 때 모든 국민이 새겨듣고 싶어할 만한 말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언이라기보다 국가 원로의 遺志(유지)로서 무언가 진실과 감동이 담긴 말씀을 남겨 주는 일은 본인에게도, 또한 갈등과 분열이 극에 달해 있는 이 나라에도 참으로 유익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물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도자의 遺志나 유언은 語義(어의)에 따라 그 파급 효과는 엇갈린다. 한 예로, 근대 중국의 두 정신적 지도자였던 孫文(손문)과 魯迅(노신)이 남긴 유언만 해도 그렇다. 손문은 '평화… 투쟁… 中華(중화)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노신은 '장례식을 위해 어떤 기념행사 비슷한 짓도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일은 잊고 각자의 생활에 정신을 돌려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바보다'고 말했다. 한 사람은 살아 남아있는 국민들에게 계속된 정치적 투쟁을 주문했고 한 사람은 떠나간 과거의 자신은 잊고 현실생활에 충실하며 '잘' 사는 것이 나라와 사회를 위한 것임을 말했다. 어느 쪽의 遺志가 오늘날 14억 중국 인민들의 정신세계와 국가 통합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는가는 그들의 이성과 가슴이 판단할 일이다.
지금 우리의 경우 DJ께서 어떤 유지를 남기는 것이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에 유익한 遺志가 될 것인가? 그가 병상에 눕고 난 이후 다수 국민들이 품는 정서는 일단은 인간적인 면에서 빠른 쾌유이고 두 번째는 무언가 혼돈과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시키는 큰어른 역할을 하고 떠나야 한다는 책임과 덕목에 대한 주문 같은 것이다. 만약 그가 '민주화의 완성을 위해 투쟁하라'든가 '독재로의 회귀를 막아내는 데 앞장서라'는 말을 던져 남긴다면 어떤 상황이 생겨나고 그 상황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이 남겨질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政局(정국)' 같은 파장밖에 더 있을까. 국민들은 또다시 그런 쓸모없는 갈등은 원하지 않는다는 건 그분도 잘 아실 것이고 아셔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말은 이런 것일 거다. '나의 정치 歷程(역정)에서 빚어낸 지난 허물들은 덮어 달라. 나를 사랑하고 추종해 준 사람들에게는 동서대화합을 간곡히 당부하고 이래저래 정치 인생에서 쌓아온 모든 재산은 국민화합재단을 만들어 헌납하겠다. 나의 정치 동지'후배는 MB정부가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 대결과 이념의 굴레는 벗어 던지고 화합과 상생의 정신으로 손잡아 도우라. 지난 방북 때의 평양시내 車(차) 안 밀담 내용은 이러이러했다….'
그런 평화와 통합의 유지를 고백하고 남길 때, 비로소 그의 노벨평화상도 제대로 더 빛날 것이며 역사 속에 남는 그의 이미지 또한 야심에 젖은 정치꾼의 모습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도 유언에서 '세상 모든 것은 다 壞法(괴법)이니라' 하셨다. 세상의 모든 욕망, 야심, 정치적 신념 따위는 다 무너져 사라지고 열반으로 돌아가는 無(무)의 형체라는 뜻이다. 쾌유 후 그의 여생에서 올곧은 遺志 말씀 외에 괴법 아닌 그 무엇이 더 남을 것인가. 거듭 말씀을 위한 쾌유를 빈다.
金 廷 吉(명예주필)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