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구지면에서 1㎞쯤 떨어진 거리에 '이로정'(二老亭'현지인들은 '이노정'이라 함)이 있다. 일전 가랑비를 맞으면서 이로정 일대를 답사하였는데, 빼어난 풍광에 새삼 감탄하였다. 낙동강 푸른 물결을 앞마당 삼아 펼쳐두고, 고령 우곡의 넓은 평야를 마치 수묵화의 원경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로정이 예사롭지 않음은 자연의 풍광보다 인물에 있다. '이로'(二老), 즉 '두 노인'이 누구인가?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일두 정여창 선생을 일컫는다. 두 선생은 모두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서 조선 오현(五賢)으로 존숭받는 대유학자이다.
무오사화 때 화를 당하여 낙향한 두 분 선생은 이곳에서 만나 함께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며 후학들에게 강학하였다. 이곳은 한훤당 선생의 처소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 경남 안음현에 거처하던 일두 선생이 몸소 찾아와서 함께 도학을 강론하였던 장소이다.
이로정 처마 아래에는 이로정 외에도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의미에 골몰하던 차 기문(記文)을 읽어나가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후대 사람들이 이곳을 '제일강산'이라 이름 붙였다. 이보다 높은 산도 그러한 평가를 얻지 못했는데 '제일'이라는 명칭이 이 조그마한 언덕에 붙은 까닭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사람에 있고 산에 있지 않다. 인재를 얻으면 한 주먹만 한 돌도 곤륜산보다 높을 수 있고, 인재를 얻지 못하면 태산같이 높은 산도 언덕보다 못할 수가 있다."
바로 인문지리의 정수를 맛보여 주는 글이다. 산은 높다고 높은 것이 아니며, 강은 깊다고 깊은 것이 아니다. 인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로정이 위치한 언덕은 조선조 도학(道學)의 맥을 잇는 두 분 선생의 기풍이 살아있기에 '제일강산'이라 칭한 것이다.
정자 기둥에는 일두 선생의 시와 한훤당 선생의 시가 앞뒤로 걸려 있었는데, 특히 한훤당 선생의 시는 평생 '소학동자'(小學童子)로 자처하며 '소학'의 가르침과 실천에 힘썼던 선생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읽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한다.
"공부를 업으로 삼았어도 하늘의 기미 몰랐거늘/ 소학 공부 해보니 이제까지의 잘못 깨닫고/ 지금부터 정성껏 자식도리 다하련다/ 구차하게 어찌 잘 사는 것 부러워하랴."
우리네 전통 건축물은 자연과 어우러져 더욱 완성미를 높이게 되고, 우리네 자연은 인물의 정신이 깃들면서 그 아름다움을 더하게 된다. 제일강산 이로정이 바로 그러하다.
장윤수 대구교대 교수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