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정점식 추모전

분도갤러리 8월 22일까지

정점식 작
정점식 작 '형상'

정갈하고 세련된 화면들이 한눈에 봐도 작가의 화력과 개성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물감을 다루는 데 있어서 드러나는 특징이 화가의 성품을 반영하듯 하다. 엷고 희박해서 바탕을 드러내며 층을 이루는 형태들과 투명하거나 탈색한 느낌을 주는 색채의 농도에서 과도한 표현을 자제하고 속기를 배제하려는 엄격한 절제가 드러나는 것 같다. 거친 표현이나 강렬한 대비를 피하면 화면의 인상이 약해지는데 작가는 주로 필치나 붓질, 또는 손놀림의 속도와 정교함에서 발생되고 있는 생동감으로 전체 균형을 맞추고 있다.

자동기술법을 연상시키는 붓 동작들의 바탕에는 서예의 운필에서 연장된 기교로서 활수한 필력이 내장되어 있다. 서체적인 조형미는 서양의 표현주의와는 다른 동양적 정신주의의 발로임이 이미 널리 주장된 바인데 우리는 그 말을 바로 이 작가의 작품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의 화면은 이런 감흥을 일으키는 감각적인 면과 함께 논리적인 배경을 가진 지적인 그림으로 읽게 된다.

후기작들에서 보는 이런 균형감과 절제력은 오랫동안 그의 작품론을 뒷받침해온 모더니즘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선생은 일찍이 추상을 조형 이념으로 받아들이며 전개한 비구상 작업으로 대구 미술사에 이름을 올렸다. 거의 한국 모던아트 활동과 동시에 선취해낸 실천적인 작업들을 통하여 지역 미술을 중앙에 알리는 데도 기여한 바가 크다. 이론을 갖춘 지적인 화가로서 그의 예술론은 비평가로서도 큰 몫을 하게 했다. 그런 선생의 생애에 대해서는 노년에 쓴 자전적이면서 회고적인 성격의 글을 통해서 더 잘 알게 되었지만 거의 독학으로 이룬 경지나 다름없었다.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점식 선생은 늘 장석수 선생과 라이벌로 비치는 면이 많았다. 기록에 있어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논박이 있었는데 그런 경쟁 관계야말로 작가를 더욱 단련시키고 한계를 극복하게 추동하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아방가르드적인 실천으로서의 모더니즘적 추상이 퇴조한 이후에도 화면을 제어하는 미적 통제력은 몸에 밴 균형잡힌 감각과 교양의 힘으로 내면화되었고 또한 성품과 일치하는 작품에 철저하게 내재화되어 있는 듯하다. 오랜 교육 경력으로 많은 제자들을 남겨 놓으셨고 또 사계의 원로로서도 존경받던 그 분의 작품과 인생이 남긴 교훈이 이제 그런 사적인 인연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게 풍부하게 해석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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