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한국인의 셈법

각 사회는 저마다 셈하는 법이 있다. 그것을 잘 읽고 해결하는 사람이 사회 생활을 잘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인 사회의 셈법은 융통성과 시간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1874년 프랑스의 달레 신부가 한국을 소개하는 단행본 책을 펴냈다.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라고 하는 이 책은 서슬 퍼런 조선왕조에서 숨어숨어 조선 사람들과 신앙을 나누었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여 씌어졌다. 이곳에 "조선인들은 소유권을 보호하고 도둑질을 금하는 도덕률을 거의 모르고 더구나 존중을 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참으로 맹랑한 소리이다.

그런데 이 말을 곱씹다 보면 소유 개념에 대한 양국 문화의 차이에 무릎을 치게 된다. 한국인은 커다란 재산은 엄격히 지키지만 작은 물건에 있어서는 융통성이 있다. 우리에게는 '서리'라는 행위가 있었다. 참외나 수박을 주인 몰래 한두 개 훔쳐서 친구들끼리 나누어 먹는 장난 비슷한 놀이(?)였다. 들키면 주인에게 야단맞고 물어주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들에게 도둑질을 했다는 죄책감이 남는 행위는 아니었다. 가령 어느 부인이 된장국을 끓이다가 자기 집 쪽으로 열린 호박을 하나 따서 국 속에 넣었다 하자. 그때 그 호박 주인이 그것을 파출소에 고발했다면 순경도 두 분이 서로 잘 해결하라고 하고 넘어갈 것이다. 물론 호박 주인은 동네에서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듣게 된다.

그렇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이 행위는 엄연히 도둑질이다. 개화기 이후 선교사들이 가꾸던 포도를 서리하러 들어갔다가 서양인 선교사에게 얼마나 혼났는지는 아직도 신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도둑질을 하여 지옥에 떨어질 신자'들을 보고 그 푸른 눈을 껌벅이며 안타까워했을 신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까운 일본도 우리와는 다르다. 일본인 가게에서 성실해서 주인의 신임을 얻은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이 학생이 하루는 배달 일이 많이 밀려서 주인의 자전거를 이용하여 일을 잘 끝냈다. 저녁에 돌아온 주인은 남의 물건을 함부로 이용했다고 하여 그를 해고시켰다고 한다.

한국인의 계산에는 이런 융통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융통성과 함께 한국인 나름, 정확한 계산법이 있다. 과거와 미래를 합친 계산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식당 계산대 앞에서 서로 지불하겠다고 밀치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었다. 이 현상을 돈을 냄으로써 자기를 과시하고 타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속성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한국인은 현재만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내면 네가 다음에 낸다는 약속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밥을 실컷 먹었는데도 다음을 기다리기 힘든 성급한 사람이 이차 자리를 마련한다. 다른 이가 삼차 술자리까지 만들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어림셈하여 자신이 낼 차례를 지켜야 한다. 이것을 못하는 사람은 '얌체'라는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모임에서 제외되기 시작한다. 현재의 계산에 충실한 외국인들은 부득부득 자신이 계산하겠다는 한국인에게 몇 번 얻어먹게 되지만, 그 기회가 줄어들 것은 뻔하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기록해 두었다가 그에 상응하는 대략의 양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한국의 중요한 사회적 코드이다.

한국인은 계산을 정확히 잘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한국식 계산에서는 아주 적은 양은 융통성 있게 양보하거나 찾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셈법은 과거, 현재, 미래를 같이 놓고 계산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은 곧잘 길에서나 국회의사당에서나 곧 최악으로 치달을 만큼 격렬하면서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굴러가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의 셈법에 있는 융통성과 시간성이 우리를 엮어간다고 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다른 문화와 접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 안에서도 다른 문화 영향이 더 큰 한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한국 문화의 기본을 잘 알리고, 타 문화와의 차이점을 잘 진단해야 할 때가 이미 다가와 있다.

김정숙(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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