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늘 '아버지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분'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리랑'으로 유명한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년)의 아들이 13일 대구를 방문했다. 15일 오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대구아리랑제 - 김산의 아리랑' 공연에 초청받은 것. 아들 고영광(72·高永光)씨는 "젊은 세대들에게 혁명가들의 희생 정신을 되새겨주는 뜻 깊은 행사"라며 감사했다.
1905년 평안북도 용천 출생인 김산은 그의 일생을 다룬 미국인 저술가 님 웨일즈의 책 '아리랑'(Song of Arirang)으로 유명한 인물.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 조선 혁명가 대표로 항일 전선에 투신했다. 일본과 중국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그는 1938년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33살의 나이에 중국공산당에 의해 처형됐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1941년 뉴욕에서 첫 출간됐다.
1937년 중국 하북성에서 태어난 고영광씨는 김산의 외동 아들. 김산이 1935년부터 조선 혁명가들과 함께 연안에서 계속 활동하다 그 곳에서 생을 마감했기에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중국인 어머니(조아령·1989년 작고)는 남편의 원래 성을 따르지 않는 대신 '고려에서 왔다'는 뜻으로 아들의 성을 '고'씨로 지었다.
고씨의 인생 역정도 파란만장하다. 그의 어머니는 친정 아버지에게 아들을 맡겨두고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어머니와 재회한 것은 중국 공산당 항일 유격대의 본거지인 '태항산'이라는 곳이었다. 그는 8살 되던 해, 유격 부대에서 해방을 맞았다. "점심 식사때 였어요. 어떤 군인이 호외를 가져와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다'는 거에요. 다들 만세를 부르며 뛰쳐나가는데, 저만 영문도 모른 채 식탁에 남아 있었어요."
고씨는 텐진의 남개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하얼빈 군사학원(대학)'에서 교수로 16년간, 당 기관인 국가경제무역위원회 과학기술 관리부서에서 20년간 일한 뒤 1998년 정년 퇴임했다. 장성한 두 아들도 뒀다.
그러나 중국 문화대혁명(1966년)때 그도 위기를 맞았다. 공산당이 김산을 '러시아 사상에 물든 배신자'로 규정, 고씨까지 처벌될 뻔한 것. 고씨는 "그 일을 겪은 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그는 님 웨일즈와 여러 차례 서신 교환을 하며 부친의 생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고씨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 2002년 해외 항일투사 2세 자격으로 해외동포재단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했고, 2005년에는 아리랑보존회 초청으로 서울을 다녀갔다. 고씨는 아버지가 가사를 쓴 아리랑을 직접 부르면서 "중국인 치고 아리랑을 모르는 이가 없다"며 뿌듯해했다. "한국사람들의 높은 민족 정신에 감탄합니다. 제가 이런 한민족의 후손이라는 게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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