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이 순 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나의 애를 끊나니.

광복절이다. 이날 읽으면 좋을 옛 시조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뽑은 작품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이다. 특별히 해설이 필요한 시도 아니지만 이 작품을 뽑아든 것은 '나라'의 울타리 속에서 삶을 영위하면서도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적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광복(光復)'이란 말은 한자어 그대로 풀면 '빛을 도로 찾다'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표준국어사전에는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라고 풀고 있다. 그것은 '광복'이라는 말에 우리 민족의 염원이 얼마나 깊게 담겨 있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일제 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광복의 기쁨을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정인보 선생님이 쓰신 광복절 노래 가사의 첫 구절은 '흙 다시 만져보자'로 시작된다. 우리의 땅이었지만 흙을 다시 만져 보아야 할 정도의 감격이었던 것이다. 광복의 날은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 라고 했다. 2절에 가서 '꿈엔들 잊을 건가' 라고 하면서 '길이길이 지키고, 힘써 힘써 나가자'며 노래를 마무리 짓는다.

애국의 시가 어찌 이 시뿐이랴만 이순신(1545~1598)의 이 작품에는 나라 사랑하는 장군의 심정이 참으로 절실하게 드러나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1595년 진중에서 읊은 것으로 억지로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쏟아져 나온 시다. '한산섬에 달이 휘영청 밝은데 수루에 혼자 앉아서 큰 칼을 허리에 차고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지 오랑캐 병사가 부는 날라리 소리가 창자가 끊어지는 듯 아프게 한다'는 시다. '수루' '혼자' '시름' '애' 라는 시어들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지 않는가.

이순신, 임진왜란 중에 거북선을 만들어 싸움마다 승리했으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탱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설명은 차라리 구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전쟁의 공적만 있고, 이 작품이 없고,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후손들의 뇌리에 이순신은 어떻게 존재할까.

애국의 뜨거운 정신이 지켜온 나라, 광복절엔 이 땅의 흙 한 줌 다시 쥐어봐야 하리라.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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